“100% 똑같이” 관람객 낙서까지 재현…무위사 극락전 벽화 모사

  • 입력 2007년 3월 2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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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단청 기술자와 화공들이 서울 종로구 조계사 근처의 한 오피스텔에서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삼존도를 모사하고 있다. 이번 모사 작업은 화재 등으로 벽화가 훼손될 경우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광표  기자
젊은 단청 기술자와 화공들이 서울 종로구 조계사 근처의 한 오피스텔에서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삼존도를 모사하고 있다. 이번 모사 작업은 화재 등으로 벽화가 훼손될 경우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광표 기자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옆의 한 오피스텔.

열다섯 평 남짓한 공간에 20여 명의 젊은 단청(丹靑) 기술자와 화공(畵工)이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붓질을 하고 있었다.

전남 강진군 무위사 극락전의 벽화 31점(1476년 제작·보물 1313∼1315호)을 모사하는 작업이다.

누군가가 화면의 색깔과 불화 사진 속의 색깔을 비교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초록색 안료 색깔이 좀 더 연해야 되겠는데.”

“아니, 내가 보기엔 지금 색깔이 딱 맞는 것 같은데.”

“자, 그럼 다들 모여서 색깔 보정작업을 합시다.”

10여 분 진지한 얘기가 오갔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서둘러 강진으로 내려가 무위사 벽화 실물의 색깔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로 했다.》

무위사 극락전 벽화 모사작업이 지난해 9월 시작돼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무위사 극락전의 벽에는 아미타삼존도(阿彌陀三尊圖·아미타불 관음보살 지장보살을 그린 불화), 백의관음도(白衣觀音圖·흰 옷을 입은 관음보살을 그린 불화)를 비롯해 모란 연꽃 그림 등 15세기 불화의 명품 31점이 그려져 있어 한국 최고의 불화 박물관으로 불리는 곳. 이 작업은 화재와 도난과 같은 만일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벽화를 완벽하게 복원하기 위해 모사본을 만들어 놓기 위한 것이다.

모사작업에 참여한 한국미술사연구소 소속 단청 기술자와 화공들은 지난해 9월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가장 힘든 일은 현재 상태의 벽화 실물과 똑같은 색깔을 만들어내는 것. 본격적인 채색에 앞서 지난해 사진을 찍고 색깔을 확인했으나 벽화의 부위마다 탈색(脫色) 정도가 달라 그 색을 맞추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빛바랜 정도가 모두 다르다 보니 무려 1000여 가지의 색을 일일이 만들어야 했다.

한국미술사연구소의 김석곤 연구원은 “사진을 찍어 놓아도 사진에 나오는 색깔과 실제 색깔은 다르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 차례씩 서로 모여서 색깔 토론을 벌여야 한다”며 “그래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또다시 강진 현장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벽화를 반투명한 트레이싱페이퍼(투사지)에 스케치해 옮기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원화 위에 대고 연필로 옮겨 그릴 때, 너무 세게 그으면 벽화 원화가 손상되고, 너무 살짝 그으면 연필의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한 사람이 1m×1m를 스케치하는 데 20일 정도가 걸렸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완벽한 재현이다. 그래서 갈라진 곳은 갈라진 모습 그대로 재현하고 관람객들의 낙서까지 똑같이 그려 넣기로 했다.

4월 중순에 마무리할 예정인 이 모사작업은 사찰 불화 보존의 전범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이번 작업을 이끌고 있는 문명대(불교미술사) 동국대 교수는 “모사본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낙산사처럼 예상하지 못한 화재가 발생했을 때 복원이 불가능하다”면서 “이를 계기로 국내의 많은 사찰에서 불화 모사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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