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쌀-생필품 등 민생경제 중국에 종속

  • 입력 2007년 2월 27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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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변방시장 전락… 물가도 같이 움직여

‘춘궁기가 닥쳤는데 쌀값은 오히려 떨어진다?’

남북 장관급회담이 27일부터 3박 4일간 평양에서 개최된다. 7개월 만에 열리는 이번 회담에서는 최대 쌀 100만 t, 비료 45만 t 등 대북지원이 주요 의제로 논의될 예정이다.

북한은 지난해 핵실험 이후 최대 지원국인 한국이 대북지원을 중단함에 따라 외부 식량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올 춘궁기 대규모 아사와 대량 탈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북한전문가들은 관측했다.

그러나 대북 소식통들이 전하는 북한의 식량 사정은 이와는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대체 무슨 사정이 있는 걸까.

▽떨어지는 식량가격=2월 말 현재 북한의 장마당(농민시장)에서 거래되는 식량 가격은 지난해 12월에 비해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명목상 식량 배급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군 특권계층이나 당 외화벌이 간부를 제외하고는 식량 배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때 배급제 부활 시도가 있었지만 이마저도 실패했다. 배급제가 붕괴된 상황에서 주민들은 장마당을 통해 스스로 식량을 조달할 수밖에 없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함경북도 지역에서 쌀값은 지난해 12월의 kg당 1000원대에서 2월 말 850원대로 떨어졌다. 옥수수 가격도 같은 기간 430원에서 350원으로 떨어졌다. 함북 지역 쌀값이 지난해 하반기에 1000원대를 유지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춘궁기에 다가갈수록 식량 가격이 오히려 하락하는 것은 기이한 현상이다.

이에 대해 북한 무역관계자 최모 씨는 “지난해 전력이 모자라 탈곡과 도정을 미뤄 오다가 최근에야 전력 사정이 일시적으로 나아지면서 본격 진행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요즘 장마당에 식량이 쏟아져 나와 식량 부족현상이 다소 완화된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아직도 대부분의 농장에 탈곡 못한 물량이 쌓여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한국의 지원까지 겹치면 식량가격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전문가의 예측과는 달리 대규모 아사와 대량 탈북 가능성도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언제까지 식량가격 하락이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북한의 식량 생산이 국내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한 다시 오르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북한 쌀값의 비밀=그렇다고 북한 쌀값이 천정부지로 오르지는 않는다. 쌀값은 국제 지원이 끊겼던 지난해 하반기에도 1100원을 넘은 적이 없었다. 수요가 많아지면 가격은 상승하기 마련이지만 그동안 최고가 수준을 넘지 않았다.

왜 이런 ‘기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해답은 중국과의 식량 무역에 있다.

2월 말 현재 북한과 이웃한 중국 옌볜(延邊) 지역에서는 취사용으로 쓰기 어려운 질 낮은 쌀이 kg당 1.8위안, 질 좋은 쌀은 2.3위안에 거래되고 있다.

1.8위안짜리 쌀을 들여오면 원가에 북한 중국 상인들의 이윤 약 10%, 와크 비용(무역허가증 사용 비용) 5%, 물류비 2%가 추가된다. 결국 북한 시장 쌀값은 중국 가격의 약 1.17배가 되는 셈이다. 이를 북한의 현재 암시장 환율(1위안=385원)을 도입해 계산하면 가장 질 낮은 쌀은 북한 돈으로 800원, 중간 수준의 쌀은 900원, 질 좋은 쌀은 1000원이 된다.

북한 시장에서 팔린 중국 쌀값이 ‘중국 현지 가격의 1.17배×환율’이라는 공식대로 움직여 온 것은 몇 년간 지속된 현상이다.

북한 내 쌀값이 중국보다 싼 지금은 수지가 맞지 않아 양국 간의 쌀 거래가 끊겼지만 북한 내 쌀값이 이윤이 생길 정도로 상승하면 다시 거래가 시작된다. 쌀값이 1100원 선을 넘지 않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대중(對中) 종속적 북한 경제=북한의 물가를 좌우하는 쌀값의 비밀을 알고 나면 북한의 나머지 상품 가격도 중국 가격을 통해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에너지난으로 대다수 공장 가동이 중단된 상황에서 북한은 생필품 공급을 중국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탈북자들을 조사한 결과 북한 시장에서 중국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70%로 북한산(20%)과 기타(10%)에 비해 월등히 높다.

쌀과 기름처럼 회전율이 높은 식품류에 비해 회전율이 떨어지는 상품은 이윤율이 조금 더 높아진다. 생필품, 가전제품, 약품, 상하기 쉬운 과일, 육류 등은 상인의 이윤율이 보통 20% 정도에 이른다. 중국 원가보다 1.27배 정도 비싸지는 것이다. 판매가 어려운 중고품, 특정기계 등은 상인들의 이윤율이 30% 정도로 상승한다.

북한은 각종 생필품을 구입하는 대가로 광물자원, 수산물 등을 중국에 팔고 있다.

북한 물가가 중국 물가에 그대로 연동되는 원인은 북한의 대중(對中) 종속성이 심각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미 배급제 붕괴에서 보듯 국가가 아무런 통제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중국의 변방 시장으로 변질됐음을 의미한다. 북한이 중국의 ‘동북 4성’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이미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한국의 대북 식량지원은 북한 식량가격을 일시적으로 하락시키는 조정 기능만 수행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어느 정도, 얼마 동안이나 가격을 하락시킬 수 있을지는 지원 물량에 달려 있을 뿐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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