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이 있어요.” “‘마빡이’라고 놀리는 친구들도 있어요.”
예술심리치료사 권계영 씨가 묻자 아이들이 손을 들고 대답한다.
“놀림을 받으면 어떻게 말할까요?”
“‘아프면 머리가 빠질 수도 있어. 친구를 놀리면 안돼’라고요.”
나연이(10·여)의 대답에 웃음과 박수가 터졌다. 》
22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예장동 서울 유스호스텔 3층 강당에 모인 어린이 10명은 역할극 놀이로 신이 났다. 이들은 1차 치료가 완료된 백혈병 뇌종양 등 소아암 환자다. 다음 달 초 입학 및 복학을 앞두고 학교생활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에 대한 대응법을 익히고 있었다.
소아암 환자 등 어린이 장기 입원자에게 교과과정을 가르치는 ‘병원학교’는 많지만 이들에게 ‘학교생활에서 살아남기’를 알려 주는 곳은 없다. 이들은 항암치료로 까까머리가 되거나 얼굴이 퉁퉁 붓고 마스크를 쓰는 외모 때문에 놀림을 받아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기 쉽지 않다.
서울 세브란스병원과 한국맥도날드는 이들을 위해 환자, 부모, 교사, 급우들을 교육하는 ‘학교 복귀 및 적응을 위한 통합프로그램’을 국내에선 처음으로 시작했다.
세브란스병원 병원학교 유일영 교장의 말이다.
소아암은 전염되지 않지만 많은 부모가 암을 앓았던 학생이 자녀와 같은 반이 되는 걸 꺼린다. 아들이 백혈병을 앓았던 허덕희(44·여) 씨는 “식당에서 대머리 아들을 보고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저 아이 옆에 가지마라’며 자녀에게 말하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이들을 배려한다고 체육시간에 아이를 양호실에 보내거나 교실을 지키게 하기도 해 되레 좌절감을 심어 주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들이 뛰어노는 게 힘들면 심판을 맡게 하거나 유명한 운동선수에 대해 발표하게 하는 식으로 아이들의 활동에 참여시키는 게 효율적인 배려라고 말한다.
역할극은 놀이로 이어졌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란 놀이를 변형해 술래가 된 아이가 “무궁화 꽃이 춤을 춥니다”, “고릴라 꽃이 쿵쿵거린다”고 말하면 다른 아이들은 춤을 추고 발을 쿵쿵 굴렸다. 규칙을 정하고 따르는 경험이 거의 없는 아이들은 이를 통해 규칙을 익히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소아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특별한 선물이 됐다.
1년 늦게 초등학생이 되는 지현이(8·여)는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오늘 해 본 상황극이) 원래 알던 거지만 연습해 봐서 좋았다”고 말했다.
동생(7)에게 골수를 이식해 준 영중이(11)는 “평소에는 엄마가 동생에게만 신경을 써 속상했지만 놀이를 해 보니 동생을 더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 때 걸렸던 악성림프종을 극복하고 세브란스병원 전공의가 된 김남균(29) 씨는 “외국에서는 학교적응 프로그램이 활발한데 한국에선 치료가 끝나면 모든 걸 부모에게 맡긴다”며 “치료를 받으면 건전한 사회인이 될 수 있는 소아암 환자들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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