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한국’ 이젠 바로잡자]<1>과제물 빌려 주는건 표절 방조

  • 입력 2007년 2월 20일 03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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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스타일’, ‘시카고대 스타일’. 미국 대학생들이 각주(脚註), 인용 등 정확한 글쓰기를 할 때 가장 널리 사용하는 기준이다. 이들 기준은 논문 스타일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기도 한다. 두 대학은 글쓰기 스타일의 선구자답게 학생들에 대한 표절 방지 교육에서도 앞서 가고 있다. 실수로라도 표절을 하지 않도록 입학 순간부터 표절 예방 교육을 철저히 한다.》

▼하버드대▼

공동 프로젝트 땐 각자 기여부분 명확히
아이디어-표현 인용 때마다 출처 밝혀야

표절(plagiarism)은 라틴어로 ‘어린아이 납치범’을 의미한다. 남의 견해를 무단 인용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정신적인 아이’를 훔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버드대의 표절 방지 교재 ‘출처를 인용하는 글쓰기 가이드북(Writing with Sources-A guide for Students)’의 도입부에 있는 경고문이다.

이 책에 따르면 ‘표절은 절박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엔 ‘참조’만 하려는 좋은 의도로 남의 저작물을 보다가 시간에 쫓기면 절박한 심정이 되어 과제를 쉽게 해결하려고 도덕적 경계선을 넘는다는 것. 이 책은 구체적 사례를 들어 인용 방법을 설명한다. 예컨대 “이 책에 나오는 ‘1997년 한 해 동안 하버드대에서 30건의 부정행위가 적발됐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그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표절”이라는 식으로 보여 준다. ‘1997년 하버드 부정행위 30건 적발’은 보통 사람이 아무 데서나 알 수 있는 상식 수준의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첫 문장에서 출처를 밝혔어도 그 뒤 문장에서 인용문 원저자의 독특한 아이디어, 표현을 계속 설명하면서 인용부호를 표기하지 않거나 출처를 다시 밝히지 않아도 ‘아이디어 표절’에 해당한다. 첫 문장에서만 출처를 밝히면서 자신은 정직하다고 독자를 속이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글 전개 구조를 출처 없이 본떠도 표절이다.

공동 프로젝트는 각자가 기여한 부분을 정확히 명시해야 ‘부적절한 공조’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국 대학생들은 동료에게 자신의 과제물을 대수롭지 않게 빌려 주고 있지만 이러한 행동은 표절 방조 행위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버드대는 표절 예방 노하우로 △마감 직전 급하게 논문 쓰는 일을 피하기 △메모할 때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견해를 구분하기 △실제보다 더 잘 아는 것처럼 보이려 들지 말기 △시간 안에 숙제를 제출하기 힘들면 교수와 상의하기 △컴퓨터 작업 때는 백업 사본을 항상 만들기 등을 들었다. 이 책은 “표절하지 않으려고 모든 글을 인용으로만 채운다면 자신의 생각이 없는 재미없는 글이 될 수 있다”며 “인용을 하되 짧게 축약하는 노하우를 배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시카고대▼

인터넷 자료 붙여쓰기 꿈도 꾸지 말아야
팀별 작업해도 과제물 돌려보는 건 반칙

시카고대 신입생들이 오리엔테이션 때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으로 한 권씩 받는 ‘대학에서 정직하게 글쓰기’는 표절 방지를 위한 안내서다.

물론 이 책에는 표절에 대한 경고도 들어 있다. 하지만 신입생들이 어떻게 하면 정직한 글쓰기를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몰라서 저지르는 잘못을 막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수업 첫날, 한 학기 동안 읽을 독서 리스트가 나온다. 교재는 첫 장부터 읽으려 들지 마라. 서론과 결론을 읽고, 목차를 보는 요령을 익혀라’, ‘중간고사 때 지난해 출제 경향을 알아보려는 것은 무방한데, 시험 문제를 받아 들고 1주일 후까지 집에서 작성해 오는 재택시험에서라도 다른 사람의 글에서 한 문장을 통째로 가져다 쓰면 안 된다’, ‘시험과 논문 마감이 집중되는 학기 말은 표절의 유혹이 가장 심한 시기다’….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표절을 피하는 방법도 안내하고 있다.

인터넷 검색 결과를 글쓰기에 활용할 때는 자료의 신뢰성을 늘 의심해야 한다. 남의 글을 정확한 인용 표시 없이 ‘긁어다가 복사해 붙여 쓰는’ 행위는 상상도 하지 말아야 한다. 자료 인용을 위해 인터넷 주소(URL)는 물론 검색 시점도 메모해 둬야 한다.

개인뿐만 아니라 팀별 작업, 과학 실험실에서 진행한 공동 과제를 ‘공정’하고 ‘정직하게’ 마무리하는 방식도 안내하고 있다.

팀별 작업 이후 숙제를 각자 제출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면 서로 상의를 할 수는 있지만 답안을 돌려 보는 것은 반칙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과학 실험실의 결과물은 ‘허위’ ‘왜곡’ ‘호도’가 조금도 있어서는 안 되며, 실험 결과를 적은 노트를 반드시 개별 관리하고, 서로 도움을 주지 말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 책의 모든 설명이 지향하는 목표는 분명하다. 정직하게 공부하고, 자존심을 지키고, 제대로 실력을 키우라는 교육적 의도를 담고 있다.

▼美, 백악관서 날조-변조-표절 조사지침 마련▼

선진국들은 표절을 비롯한 연구 부정행위(research misconduct)의 심각성을 일찍부터 인식하고 이를 막기 위해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발전시켜 왔다. 최근에는 연구 부정행위를 고발하고 조사하는 차원을 넘어 사전 예방과 교육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가장 먼저 공식적으로 표절에 대응해 관련 제도를 정비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잇따른 연구 부정사건을 계기로 1980년대 중반 이후 이를 조사하는 절차를 연방기관별로 마련해 왔다. 이는 2000년 12월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연방지침(FPRM)’을 발표하면서 완성됐다.

FPRM은 ‘날조(Fabrication), 변조(Falsification), 표절(Plagiarism)’을 연구 부정행위로 정의하고 성립요건, 처리절차, 사후관리 대책까지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제기된 부정 의혹은 ‘탐문→조사→판결→항소’의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검증하도록 했다.

유럽 국가들도 선진적인 연구윤리제도를 갖추고 있다. 특히 북유럽 국가들은 부정행위를 넓게 정의해 ‘부정직성(dishonesty)’이란 용어를 사용하며 조사와 처벌보다는 훌륭한 연구를 장려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데 비중을 두고 있다.

1992년 ‘과학부정직성위원회(DCSD)’를 만든 덴마크가 대표적이며 뒤이어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등도 연구윤리에 대한 국가위원회를 발족했다.

독일도 1997년 대형 연구부정 사건이 발생한 뒤 적극적인 대처에 나섰다. 기초연구기관을 총괄하는 막스플랑크연합회(MPG)는 1997년 11월 부정행위 조사절차에 대한 규정을 제정하고 지침을 준수하지 않는 기관은 연구비 지원을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영국에서는 1998년 과학기술청과 8개 연구지원기관이 공동으로 발표한 ‘바람직한 연구수행을 위한 보호조항’이 표준 규정으로 통용되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대처할 필요성이 제기돼 2005년 독립기구인 ‘보건 및 생의학 연구윤리를 위한 국가위원회’가 탄생했다. 일본도 논문 관련 부정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학술회의는 지난해 4월 ‘과학자 행동규범’을 발표하고, 대학 및 연구기관에 부정행위 방지 제도를 도입할 것을 요청했다. 일본 종합과학기술회의는 지난해 2월 연구 부정에 대한 벌칙을 도입하도록 각 기관에 요구했다. 문부과학성은 지난해 정부 연구비 지원 관련 논문 부정을 신고하는 창구를 개설했다.

한국은 15일 연구윤리확립추진위원회가 대학과 학술단체에 국제 수준의 연구윤리 지침 등을 마련하도록 권고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이인철 교육생활부 차장 inchul@donga.com

▽국제부 김승련 워싱턴 특파원 srkim@donga.com 공종식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금동근 파리 특파원 gold@donga.com

▽사회부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교육생활부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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