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년만에 밝혀진 징용 한인 억울한 죽음…日軍, 170명 학살

  • 입력 2006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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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태평양전쟁 말기 남태평양 마셜제도 내 밀리 환초(環礁·산호초 섬이 띠 모양으로 연결된 곳)에서 강제 동원한 조선인 군속 170여 명을 반란죄로 집단 학살한 사실이 61년 만에 일본 정부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특히 조선인 군속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가 굶주림에 지친 일본군들이 조선인 군속들을 살해해서 인육(人肉)을 먹은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라는 생존자의 증언과 수기가 나와 사건의 실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는 최근 일제가 밀리 환초 내 첼퐁 섬에서 조선인 군속을 집단 학살했다는 기록이 담긴 일본의 공식문서를 발견했다고 25일 밝혔다.

진상규명위는 이 문서를 근거로 ‘밀리 환초 집단학살사건’에 대해 직권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직권조사란 피해자나 유족의 신청이 없어도 위원회가 진실 규명 차원에서 반드시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취하는 조사 방식.

밀리 환초 학살사건과 관련해 진상규명위가 발견한 문서는 1952년 일본 제2보건국(옛 일제 해군성) 직원이 작성한 ‘구(舊)해군 군속 신상조사표’로, 여기엔 당시 조선인 군속들이 무차별하게 총살당한 경위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신상조사표의 기록에 따르면 밀리 환초에 주둔한 일본군은 미군 함정의 봉쇄작전으로 보급로가 끊기자 여러 섬으로 군대를 분산 배치해 식량을 자급자족하도록 했다.

1945년 3월 18일 일본군이 주둔했던 섬 중 하나인 첼퐁 섬에서 조선인 군속들이 일본인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키자 군 지휘부는 중무장한 일본군 토벌대를 이 섬으로 보내 대다수 조선인을 반란죄로 총살했다는 것이다.

신상조사표엔 이런 사실을 당시 조선인 학살에 직접 참여했던 나카가와 기요히토(中川淸人) 대위가 증언했다고 기록돼 있다.

진상규명위 이세일 진상조사팀장은 “신상조사표엔 강제 동원된 군인과 군속의 생사가 나와 있는데 밀리 환초 사건처럼 당시 상황이 자세히 기록된 경우는 없다”며 “첼퐁 섬에 있던 조선인 184명 가운데 170여 명이 당시 학살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진상규명위는 이달 중순 밀리 환초에 강제 동원됐던 생존자인 이인신(83) 김재옥(82) 씨를 만나 증언을 확보했다.

이 씨는 강제 동원부터 밀리 환초를 탈출할 때까지 3년여 간의 군속생활을 기록한 123쪽 분량의 수기를 진상규명위에 공개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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