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3년 칠레 민중가수 하라 처형

  • 입력 2006년 9월 1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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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9월 11일 칠레의 라디오에선 이상한 기상 정보가 흘러나왔다.

“산티아고엔 지금 비가 내립니다.”

날씨는 맑았다. 구름은 있었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1년 중 300일 이상 화창한 곳이 산티아고다. 사람들은 오보거나 우스갯소리일 것이라며 웃어넘겼다.

그들은 몰랐다. 산티아고는 젖고 있었다. 하늘은 맑았으되 땅이 울었다. 군홧발에 짓밟힌 수천 명의 핏빛 비가 쏟아졌다. ‘17년 피의 독재’ 피노체트 군사정권의 서막이다.

1960, 70년대 라틴아메리카는 깨어나는 휴화산이었다. 소수 독점 자본의 횡포에 민생은 신음했다. 이런 시대 상황에 따라 1967년 숨진 체 게바라의 혁명 기운이 남미 전역으로 퍼져 가던 시기였다. 민중의 반란이 시작됐다.

칠레는 다른 남미 국가와는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게릴라식 무장투쟁보다는 규칙과 질서를 존중하는 쪽을 택했다. 정파를 초월한 민중연합을 결성했다. 1970년 9월 4일의 선거혁명. 대선에서 민중연합 후보로 나선 살바도르 아옌데가 승리했다. 칠레의 봄이었다.

민중 가수 빅토르 하라는 봄의 주역 중 하나였다. 팝송만 틀던 시절, 안데스 전통민요 포클로레의 선율을 기타에 실었다. 노랫말은 민중의 애환을 보듬었다.

‘기타는 총, 노래는 총알.’ 민중의 편에 선 라틴아메리카 가수들의 연대, ‘누에바 칸시온(Nueva Cancion·새로운 노래)’은 이렇게 꽃이 피었다.

그러나 산티아고의 봄은 짧았다. 쿠데타 당일 3군총사령관 피노체트는 2대의 전투기로 대통령궁을 폭격했다. 일주일 동안 아옌데 대통령을 포함해 3만여 명이 숨졌다. 당시 상황을 그린 영화 제목 ‘산티아고에 비는 내리고’는 쿠데타군의 작전 암호였다.

14, 15일 집단 처형을 당하기 직전까지도 하라는 민중연합 찬가 ‘벤세레모스’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가수의 주검은 손목이 부러진 채로 발견됐다. 군은 그의 기타 치는 손목마저 싫었던 것이다.

“예술가는 창조자다. 창조는 변혁이다”라고 외쳤던 하라. 그의 노래는 칠레 와인처럼 붉게 사람을 취하게 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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