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9년 닉슨-흐루쇼프 ‘부엌논쟁’

  • 입력 2006년 7월 24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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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냉전이 한창 무르익어 가던 1950년대 말, 미국과 소련은 체제 경쟁에 열을 올렸다.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쏘아 올리면서 우주개발 경쟁에 들어간 것도 이 즈음이다.

이런 와중에 미국과 소련은 각기 상대국에서 우수 상품을 전시하는 무역박람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상대국에 체제 우위를 자랑하는 계기로 삼고자 했던 것.

1959년 7월 24일, 리처드 닉슨 미국 부통령은 모스크바 소콜니키 공원의 미국 박람회장에서 니키타 흐루쇼프(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손님으로 맞아 전시장을 안내했다. 뒷날 ‘부엌논쟁(Kitchen Debate)’이라 일컬어지는 냉전시대 최대 에피소드가 여기서 벌어졌다.

▽흐루쇼프=미국이 생긴 지 얼마나 됐소? 300년?

▽닉슨=150년이죠.

▽흐루쇼프=소련은 42년이 됐고 앞으로 7년이면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오. 추월하면서 ‘따라오라’고 손을 흔들 거요.

▽닉슨=경쟁을 하려면 사상의 교류가 있어야 하오. 당신이 모든 것을 알진 못하지 않소.

▽흐루쇼프=당신이야말로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 외엔 공산주의를 전혀 모르지 않소.

▽닉슨=소련이 앞선 게 있소. 우주탐사 로켓 같은 것 말이오. 우리는 컬러TV 같은 것에서 앞섰소. TV를 통해 양 국민이 서로를 알아야 합니다.

▽흐루쇼프=좋소. 당신이 우리 국민 앞에 서고 내가 당신 국민 앞에 섭시다. 당신이 자본주의 변호인이라면 난 공산주의 변호인이 되는 거요.

▽닉슨=당신은 정력적이라서 훌륭한 변호인이 될 거요. 미 상원에서라면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 행위)로 비난받을 테지만….

두 사람은 최신 주방시설을 갖춘 모델하우스로 향한다.

▽닉슨=최신 모델이오. 미국인은 여성의 편안한 삶에 관심이 많소.

▽흐루쇼프=음식을 입에 집어넣는 기계는 없소? 미국의 집들은 20년밖에 못 견딘다면서요. 그래야 새 집을 지어 팔 수 있을 테니까.

▽닉슨=그게 아니라 미국인들은 20년쯤 지나면 새 집을 갖고 싶어 하는 거요.

▽흐루쇼프=소련에선 누구나 집을 가질 수 있소. 미국에선 돈이 없으면 도로에서 자야 하지 않소?

▽닉슨=우리에겐 다양성이 매우 중요하오. 우리는 다양한 세탁기를 만드는 많은 제조업체가 있소. 그래야 주부들이 선택을 하는 것이오.

열정적인 웅변가와 논리적 변론가…. 다음 해 흐루쇼프는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다 구두를 벗어들고 연단을 두들기는 해프닝을 연출하고, 닉슨은 TV토론에서 존 F 케네디의 감성과 이미지에 호소하는 전략에 밀려 대선에서 패배한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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