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 내달 1일 창설 60주년…특공여경 4인을 만나다

  • 입력 2006년 6월 26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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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글라스를 끼고 자동소총을 든 여성 특공대원 4명이 23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경찰특공대에서 당당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위로부터 김현옥 손미현 문선경 임은동 순경. 안철민 기자
선글라스를 끼고 자동소총을 든 여성 특공대원 4명이 23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경찰특공대에서 당당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위로부터 김현옥 손미현 문선경 임은동 순경. 안철민 기자
한국 여경이 다음 달 1일로 창설 60주년을 맞는다. 군사정부 시절 한때 여경 폐지론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들은 60년 동안 경찰조직에 ‘온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경찰 내에서 마지막 금녀(禁女)의 벽이었던 경찰특공대도 2000년 11월부터 여성에게 문을 열었다. 현재 전국 7개 지방경찰청 산하 경찰특공대(대원 400여 명)에서 활약하는 여경은 모두 11명. 이들 가운데 사회와 가정을 모두 지켜 나가고 있는 서울청 산하 경찰특공대의 기혼 여경 4명을 만났다.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방배동 경찰특공대 휴게실로 검게 그을린 여경 4명이 들어섰다. 이들의 무도 실력은 4명 모두 합쳐 19단.

하지만 총기를 내려놓고 선글라스를 벗자 연병장에서 봤던 날렵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여느 주부와 다를 바 없이 쉴 새 없이 이야기꽃을 피웠다.

손미현(26) 순경은 지난해 12월 특공대원인 양영상(30) 순경과 결혼했다. 특공대 커플로는 두 번째. 손 순경의 뒤를 이어 임은동(30) 순경 역시 특공대원인 이용칠(32) 경장과 올해 4월 결혼했다.

임 순경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몰래 애정표현을 하는데도 꼭 대원들에게 들킨다”며 “총각 대원들에게 미안할 뿐”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김현옥(30) 순경은 결혼생활에서 최고참이다. 지난해 5월 검도체육관 관장과 결혼한 그는 “결혼 전에는 남성 대원들의 벗은 상체를 보면 깜짝깜짝 놀랐는데 결혼 뒤에는 오히려 남성 대원들과 허물없이 지내고 있다”며 호쾌하게 웃었다.

문선경(25) 순경은 24일 태권도 도장을 하는 대학 선배와 백년가약을 맺은 새댁. 문 순경은 “솔직히 체격 조건에서 남성 대원에게 밀릴 수밖에 없는데 ‘왜 따라오지 못하느냐’고 다그칠 때면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무도 및 특공무술 훈련, 대테러 전술 훈련 등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들에게 남성 대원들과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올해 5월 경기 평택시 대추분교 철거현장이나 지난해 6월 경기 오산시 철거민 시위현장에 투입된 이들은 누구보다 재빠르게 임무를 완수해 조직 내외의 신뢰를 얻었다.

이들에게 가장 힘든 점을 묻자 이구동성으로 ‘군대식 용어’를 꼽았다. 처음 듣는 낯선 말 때문에 빚어진 해프닝이 적지 않았다.

2003년 겨울의 일이다. 이들은 빗물과 오물이 섞인 웅덩이(특공부대원들은 이곳을 ‘오리탕’이라고 부른다)에서 얼차려를 받았다. 교관은 세수를 하도록 지시했고 여경들은 마지못해 이 물로 세수를 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교관의 지시사항은 세수(洗手)가 아닌 퇴수(退水·물에서 벗어남)였다고 한다.

금녀의 벽은 허물어졌지만 인사 등 일부 문제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남성 대원의 경우 3년마다 진급시험을 치러 합격하면 계속 특공대에 잔류할 수 있지만 여성 대원에겐 인사원칙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3년 뒤엔 일선 경찰서로 나가야만 한다. 이들 역시 올 12월 특공대를 떠난다.

김 순경은 11월 새로 선발될 여경 특공대원들에게 “부딪치고 즐겨라”고 말해 줄 참이다.

이왕민 경찰특공대장은 “여경이 들어오고 나서 부대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며 “분위기뿐 아니라 각종 전술운영에 있어서도 여경들은 특공대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여경 60년 발자취…1946년 80명으로 시작 현재 4572명▼

광복 후 미군정 시절인 1946년 5월 15일 경무부에선 처음으로 여자 경찰관을 모집한다는 공고문을 붙였다. 당시 몇 명이 응시했는지는 기록에 없다. 다만 경위급 간부 16명과 순경 64명 등 80명이 같은 해 7월 1일 창설된 여성경찰국에 배정됐다.

초대 여성경찰국장은 여성 교육자였던 고봉경(납북 후 생사 미확인) 선생이 맡았다. 당시 여자 경찰관의 제복은 짙은 자주색으로 무릎 밑 20cm 길이의 치마와 잠바식 상의였다고 한다.

이들이 법원 재판을 견학하던 날, 말로만 듣던 여경을 처음 본 시민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교통 경찰관이 동원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주로 소년범과 여성범 단속업무를 맡았다.

여성 순경 공채가 정식으로 도입된 것은 1972년. 여성 첫 경무관인 김인옥(54) 울산지방경찰청 차장과 홍태옥(53·총경)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이 공채 1기 동기생이다.

1989년부터는 경찰대학이 입학생의 10%를 여성에게 할당해 매년 12명 정도의 여경 간부가 배출되고 있다.

1991년 9월엔 전국 8개 지방경찰청에 ‘여자형사기동대’가 설치됐다. 1998년엔 여경으로서는 처음으로 김강자(61) 씨가 총경으로 진급해 서울 종암경찰서 서장으로 부임했다.

현재 여경은 경무관 1명과 총경 3명을 비롯해 4572명으로 전체 경찰의 4.8%를 차지하고 있다. 총경은 홍 과장 외에 이금형(48) 서울 마포경찰서 서장과 설용숙(48) 경북 성주경찰서 서장이 있다.

여경은 양적인 면에서 60년 만에 57배나 늘었다. 그뿐만 아니라 수사·형사 부문에서 782명이 근무하는 등 경찰의 전 기능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경찰청은 현재 순경 채용인원의 20∼30%를 여성에게 할당해 2014년까지 여경의 비율을 전체 경찰의 1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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