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상거래 10년]“난, 인터넷으로 아파트도 샀다”

  • 입력 2006년 5월 3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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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여름. “당신 미쳤어?” 주부 김혜숙(35·서울 강남구 대치동) 씨는 집으로 배달된 택배 상자를 보면서 남편에게 쏘아붙였다. “물건을 만져 보지도 않고, 또 누가 신용카드 번호를 도용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는 거예요?” 이랬던 그가 변했다. 2006년 5월, 그는 Y온라인 서점의 ‘플래티넘’ 회원이다. Y서점에서 매월 30만∼40만 원어치씩 책을 구입한다. 차량용 내비게이션, 로봇청소기 등 수십만 원짜리 생활용품은 물론 최근엔 수백만 원짜리 해외여행 효도관광 패키지도 인터넷으로 계약했다. 김 씨는 요즘도 가끔 남편을 나무란다. “당신 미쳤어?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게? 반값이면 인터넷에서 살 수 있는데….”》

○ 1억 원 시장이 10년 만에 10조 원 시장으로

김 씨 혼자만의 변화가 아니다.

1996년 6월 1일 국내 최초의 인터넷쇼핑몰 롯데닷컴과 인터파크가 문을 연 지 10년 만에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개에 불과했던 인터넷 쇼핑몰 업체는 4403개로 늘었고, 연간 1억 원에도 못 미쳤던 거래액은 작년 말 현재 10조4000여억 원으로 10만 배 이상 커졌다.

이용 고객도 대폭 늘어났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1996년 731만 명이던 인터넷 이용 인구는 지난해 3301만 명으로 늘었다. 4명 가운데 3명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인터넷 쇼핑몰을 한 번이라도 이용한 고객은 전체 인터넷 이용자의 절반을 넘는 51.2%에 이른다. 작년 말 기준으로 1700만 명가량이 인터넷으로 쇼핑을 즐긴 것이다.

인터넷 쇼핑몰은 이제 연령을 초월한 ‘국민 쇼핑’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인터파크의 회원 분포에서도 이런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초창기인 1997년엔 30대 고객이 전체의 63%로 압도적이었다. 지금은 20대가 42%로 가장 많고 30대(32%), 40대(15%), 10대(6%) 순으로 연령층이 확산되는 추세다.

최근엔 40대 이상 중장년층의 인터넷 쇼핑 활용 빈도가 점차 증가하는 등 ‘노(老)티즌’이 인터넷의 주요 고객으로 등장하는 추세도 보인다.

○ 책에서 아파트까지 사고파는 시장으로

초창기 인터넷 쇼핑몰에서 거래되는 품목은 배달하기 쉬운 상품 위주였다.

택배 과정에서 고장이나 파손되는 일이 생기지 않고, 반품 요구를 하기 힘든 CD, 책, 티켓 등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택배 기술이 발전하고 거래 규모가 커지면서 판매 품목도 다양해졌다.

2000년 이후에는 디지털카메라, 크리스마스트리, MP3플레이어, 로봇청소기 등 깨지고 파손되기 쉬운 제품도 쇼핑몰의 인기상품 리스트에 올랐다.

최근엔 아파트 등 부동산도 인터넷을 통해 거래된다.

올 3월 29일부터 진행된 경기 성남시 판교신도시 아파트 청약접수에서는 청약자 46만5791명 가운데 88%인 41만1628명이 인터넷을 이용해 아파트 인터넷 청약시대를 열었다.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최민섭 교수는 “객관적인 정보를 입수하기 쉬운 전월세를 중심으로 인터넷 부동산 거래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유비쿼터스 인터넷 쇼핑’

‘언제 어디서든, 보지 않고 만지지 않고 사는 인터넷 쇼핑의 미래는 무궁무진하다.’

인터넷 전문가들은 이런 전자상거래 시장의 미래를 그린다.

가천의과학대 황희정(컴퓨터소프트웨어) 교수는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조만간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 환경에 접속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시대가 온다”며 “이런 환경에서는 길을 가다 휴대전화나 다른 도구를 이용해 인터넷 쇼핑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산품 중심이던 인터넷 쇼핑 리스트는 이제 신선식품이나 서비스 상품 등으로까지 확대되는 추세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진혁 연구원은 “미래의 인터넷 쇼핑시장은 소비자가 곧 판매자가 되는 ‘e마켓 플레이스(온라인장터)’가 중심이 될 것”이라며 “만져 보지 않고 사도 불안해하지 않는 소비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 인터넷 쇼핑몰의 그늘

커진 외양만큼이나 그늘도 생겼다. ‘돈이 된다’는 소문이 돌자 인터넷에도 사기꾼들이 꼬이기 시작한 것.

2003년 ‘하프플라자 사건’은 대표적인 인터넷 쇼핑몰 사기 사건이었다. 당시 인터넷 쇼핑몰 하프플라자는 한동안 전자제품 등을 반값에 팔아 입소문을 낸 뒤 소비자 9만6000명으로부터 물건 값 310억 원을 받아 가로챘다.

최근엔 영화 성인콘텐츠 사이트들이 ‘월드컵 16강 기원 이벤트’를 한다며 응모한 소비자들에게 휴대전화 요금으로 3만 원씩 청구해 물의를 일으켰다.

청소년이 많이 이용하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성인용품이나 무기류를 버젓이 팔거나, 고객이 잠시 맡긴 물건 값으로 단기 투자를 하기도 하고, 변태 광고를 내보내는 일도 적지 않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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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직종 만들고… 택배업체엔 ‘생명수’

인터넷 상거래는 새로운 업태와 직종을 만드는 역할도 톡톡히 했다.

인터넷 쇼핑몰이 활성화되면서 가장 먼저 성장한 업종은 전자지불결제(PG) 대행업이다.

PG는 금융회사와 인터넷 쇼핑몰 업체, 소비자 간 대금 결제를 대행해 주면서 물건 값의 3∼4%를 수수료로 받는다.

PG 분야의 대표적인 업체는 이니시스, 데이콤, 한국사이버페이먼트 등. 특히 업계 1위인 이니시스의 매출액은 2001년 7420억 원에서 지난해 1조2200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카테고리 매니저’도 인터넷 쇼핑몰이 만든 대표적인 신(新)직종. 이들은 e마켓 플레이스(온라인장터)에서 비슷한 품목의 물건을 파는 판매자들을 관리하는 일을 한다. 인터넷 쇼핑몰마다 50∼60명의 카테고리 매니저를 두고 있다.

온라인 장터 ‘G마켓’이 최근 입점업체 164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 업체들은 판매를 시작한 뒤 평균 2명 정도를 추가 고용했다고 답했다.

G마켓은 “옥션과 GS이스토어, 다음온켓 등 온라인 장터에 등록해 생계를 유지하는 판매자는 수십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택배업계와 네이버 다음 야후 등 인터넷 포털 업체에도 인터넷 쇼핑몰은 ‘생명수’와 다름없었다.

택배업계에 따르면 2000년 국내 전체 택배 물량은 2억5000만 상자였으나, 지난해에는 5억4000만 상자로 증가했다.

포털 업체도 주 수익원인 검색광고의 60% 이상을 인터넷 쇼핑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포털 분야 1위 업체인 네이버가 지난해 벌어들인 검색광고 매출 1730억 원 가운데 인터넷 쇼핑몰 업체가 낸 돈이 1000억 원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터넷 전자상거래의 성장은 판매 가격을 떨어뜨리는 부대효과도 낳았다. 인터넷 쇼핑몰이 판매를 제외한 광고 배송 결제를 외부 업체에 맡겨 비용을 줄이고 그만큼 물건값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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