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향기속으로 20선]<15>사계절 꽃산행

  • 입력 2006년 4월 5일 0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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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봄기운을 흠뻑 머금은 대지 위로 수많은 봄꽃이 고개를 내밀고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노래를 시작한다. 노루귀, 올괴불나무, 복수초, 너도바람꽃, 처녀치마, 왜현호색, 제비꽃들이 형형색색의 꽃과 새잎을 달고 봄의 향연을 펼친다. ―본문 중에서》

근래에 우리 들꽃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취미로 꽃을 찍으러 다닌다고 하면 “야생화요?”라고 알은체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러한 현상에 발맞추어 이 방면의 안내서도 활발하게 출간되고 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모두에게 신뢰를 주면서 풍부한 정보와 정확한 지식을 제공하는 안내서는 의외로 드물다는 사실이다. 그러던 중 필자는 최근 현진오 박사의 ‘사계절 꽃산행’을 만나 기분 좋게 읽고 있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 있다. 제1부는 설악산 태백산 덕유산 한라산 변산반도 동강 울릉도 등 들꽃의 명소로 이름난 곳을 중심으로 엮었다. 말하자면 들꽃의 자생지를 소개한 부분이다. 그리고 제2부는 변산바람꽃 앉은부채 가시연꽃 분홍바늘꽃 광릉요강꽃 등 들꽃 중에서도 특별히 가치가 높은 꽃들을 중심으로 엮었다.

이렇게 2부로 나뉘어 있는 것이 우선 이 책의 장점이다. 읽는 사람이 그때그때 용도에 따라 골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언제 태백산 일대를 한번 가 보고 싶은데’라고 생각하였다면 바로 제1부의 태백산을 보면 된다. 그러면서 어디에 가면 우리나라 특산 식물인 모데미풀을 만날 수 있고, 그것도 어느 산에 가면 가장 큰 군락지를 볼 수 있다는 식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의 더 큰 장점은 이 모두가 저자의 생생한 탐험 기록이라는 점이다. 책을 읽어 나가노라면 마치 어떤 탐험가의 탐험기를 읽는 스릴을 맛보게 된다. 지금까지 남한에는 없다고 알려졌던 꽃을 만났을 때의 흥분, 새 군락지를 발견하였을 때의 황홀감, 그런 것을 마치 내 것인 양 함께 느끼게 된다. 사실 깊은 산에 가 꽃을 만나는 기쁨은 바로 보물을 찾는 기쁨이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다. 저자의 깊은 전문 지식이 곳곳에서 빛난다. 그것도 유려한 문장력으로 마치 수필을 읽듯 가볍고 운치 있게 전달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꽃 이름의 유래에 얽힌 전문적인 해설, 식물 분류에 대한 학계의 최근 동향, 자연 보호에 대한 국가 정책의 여러 정보, 식물 생태에 대한 세세한 내용 등 저자가 아니면 이 모두를 이렇게 종합적으로, 또 이렇게 균형 있게 다루지 못하였을 것이다.

식물학과를 졸업한 정통파로서 현재 동북아시아식물연구소를 운영하면서 ‘꽃산행’이라는 새말을 만들어낸 저자. 그에게서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 필자를 올 한해도 산과 들로 이끌어 낼 것 같다.

일생을 숲 속에서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미국의 철학자 소로는 일찍이 “인간은 사회의 일원이라기보다는 자연의 주민 또는 자연의 한 부분”이라 하지 않았던가. 아니, “아직 인간에게 정복되지 않은 야성(野性)이 있다는 것은 인간을 얼마나 신선하게 만드는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한해도 들꽃과 시간을 보내는 행복이 크겠으니 이 어찌 고마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익섭 국어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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