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여성의 신비

  • 입력 2006년 2월 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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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식장에서 여학생들은 당당했다. 15년 뒤 그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꼽히는 베티 프리던의 ‘여성의 신비’는 이런 궁금증에서 비롯됐다. 1942년 미국 스미스칼리지를 올A로 졸업한 그는 둘째 아이 출산휴가를 요구했다가 기자직에서 해고된 상태였다. 졸업동기 여학생 대부분은 아담한 교외주택의 부엌바닥을 윤이 나게 닦는 현모양처가 돼 있었다. 이게 다란 말인가.

▷“유능한 여성이 자기 능력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여성의 신비에 의해 금지된 것들이다.” 1963년 출간된 ‘여성의 신비’는 여성사를 바꾼 불방망이였다. 남편과 애들에게만 목매달지 말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찾으라고 여성들 가슴에 불을 질렀다. 세계적으로 260만 부가 팔렸고 우리나라에서도 1978년 처음 번역돼 여성학 필독서로 꼽혀 왔다. “내가 한 일은 그대로 역사가 됐다.” 프리던의 말대로 임금과 승진에서의 남녀평등, 낙태허용과 보육확대를 요구한 그의 투쟁은 고스란히 여성학 역사로 기록됐다.

▷그 책이 나온 지 42년이 흐른 지난해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엘리트 여대생들, 일보다 엄마의 길로 간다’는 기사를 실었다. 명문 예일대 출신 여성의 상당수가 결혼 후 직장 대신 가정과 육아를 선택한다는 내용이다. 홍일점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가정이란 안락한 포로수용소라고 프리던이 썼지만 요즘 여자들은 그렇게 안 본다”고 했다. 영악한 페미니즘의 후예들은 섹시함을 무기 삼아 남성의 부와 지위에 무임승차하기를 즐긴다는 거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던 딸들이 결국 엄마와 비슷해지는 것도 여성의 신비랄 수 있을까. 그 이유를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로 보는지, 직장과 보육 등 사회여건 탓으로 보는지에 따라 삶의 자세도, 페미니즘의 노선도 달라질 터이다. 분명한 건 과거와 달리 지금은 여성이 일이나 가정, 또는 둘 다를 선택하게 됐다는 점이다. 물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본인 몫이다. 선택의 길을 열어 준 혁명적 페미니스트 베티 프리던의 명복을 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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