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남녀 ‘웃음 코드’ 다르다

  • 입력 2006년 1월 1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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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하나. “1분만 지속해도 10분 동안 에어로빅을 한 효과가 있으며, 혈압을 낮추고 심장혈관과 폐 기능을 활발하게 하는 것은? 혈중 산소량은 물론 엔도르핀을 증가시켜 면역 체계를 강화하고 스트레스 호르몬도 감소시키는 이것은?” 답은 ‘웃음’, 즉 유머다. 유머는 세계 어디에서나 통한다. “긴장을 풀고 근심을 잊고 상대에게 다가가는 방법”(미국 코미디언 케이트 로저스)으로 유머만 한 것이 없다. 그렇다면 하나의 유머에 대해 남성과 여성이 보이는 반응의 차이는 없을까. “남성이 여성의 말을 이해하는 것은 외국어보다 더 힘들다”(독일 코미디언 마리오 바르트)고 할 만큼 남녀의 사고 방식이나 언어 체계가 다르다면, 유머에 대한 반응도 다르지 않을까. 그 해답은 ‘다르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위크엔드팀과 고려대 언론학부 마동훈 교수 연구팀이 현대백화점의 20, 30대 남녀 직원 4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및 심층 인터뷰를 통한 유사(類似)실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은 같은 유머에도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녀에게 ‘통하는’ 유머가 다른 것이다. 그 남녀 웃음의 코드는 무엇일까.》

○ “순간의 재치” vs “이야기의 흐름”

실험 결과 남녀의 유머에 대한 반응은 큰 차이를 보였다. 실험 과정에서 남녀가 함께 웃는 경우도 있었으나 여성들이 박장대소를 하는데 반해 남성들은 웃지 않거나, 그 반대인 경우도 자주 나왔다. 한쪽만 웃는 경우도 모두 5회였다.

설문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코너에 대한 흥미도와 공감도에 대해 남성과 여성은 상반되는 입장을 보였다. 이야기, 즉 대화로 진행되는 야심만만의 경우 여성의 평균 점수는 10점 척도에서 흥미도 7.8, 공감도 8.0이 나온 반면 남성은 5.89와 5.94에 불과했다.<표1>

‘웃찾사’에 대한 흥미도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평균적으로 남성(6.23)보다 여성(6.89)이 후한 편이나 이유가 크게 달랐다. 여성은 내러티브(이야기)가 강조된 ‘행님아’에 8.45의 높은 점수를 줬지만, 슬랩스틱 요소가 짙은 ‘사스’(5.6)와 ‘퀴즈야 놀자’(6.63)는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했다. 남성은 퀴즈야 놀자(6.35) 행님아(7.0) 사스(5.35)에 비슷한 점수를 매겼다.<표2>

마 교수는 “소규모 유사 실험이 갖는 연구설계 및 표본 수의 한계가 있지만 남녀의 반응이 서로 다르다는 대략적인 경향성은 드러났다”고 말했다.

인물에 대한 호감도나 평가 의견에 대해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웃찾사 행님아에 출연하는 ‘김신영’의 경우 여성은 90%(18명)의 지지를 보냈지만 남성은 50%(10명)에 그쳤다.<표3> 여성들은 “자연스럽다” “연기를 잘한다” “공감이 간다”고 의견을 말했지만, 남성은 “행동거지가 웃기다” “몸을 사리지 않는다”고 평했다. 남성 중에는 “억지로 웃기려 해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상반된 의견(10%)을 밝힌 이도 있었다.

야심만만의 경우 남성은 손예진(70%)을, 여성은 박준규(40%)를 가장 많이 꼽았다.<표4> 여성은 “자연스럽고 공감대가 형성되는 얘기가 재미있다” “편안하게 대화하는 분위기가 좋았다”를 이유로 든 반면 남성은 “예쁘다” “이상형이다”며 유머와 상관없는 점을 꼽았다.

마 교수는 “남성은 순간적으로 주고받는 농담이나 행동이 웃기는 데서 유머를 찾는 경향을 보인 반면 여성은 함께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거나 공감대가 형성돼야 흥미를 느끼는 양상을 보였다”고 진단했다.


○ “권력의 도구” vs “결속의 수단”

남녀 유머 코드의 차이는 해외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미국 광고회사 JWT는 지난해 1∼6월 8개국의 소비자와 코미디언, 드라마 ‘섹스 앤드 시티’의 작가 등을 대상으로 조사해 “유머가 남성에게는 권력의 도구이지만 여성에겐 결속의 수단”이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JWT에 따르면 남성은 농담이라고 불리는 유머를 선호한다. 대화 과정에서 말의 오고감보다 특정 상황에서 입담으로 이어지는 말장난을 즐긴다. 이때 전형적으로 ‘놀림감’ 혹은 조롱당하는 희생자가 나타나면서 유머를 통해 권력 관계가 구분된다.

여성은 틀에 짜인 농담보다 ‘이야기가 있는’ 스토리 텔링 유머에 더 공감한다. 평범한 사실 속에서 재미있는 요소를 발견하고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을 때 미소를 띤다는 것이다. 슬랩스틱 코미디에 대한 눈이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남성은 슬랩스틱이 물리적인 경쟁 구도가 분명하고 희생양이 있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러나 여성은 상처주는 이보다 받는 사람에게 더 공감하기 때문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KBS ‘유머 1번지’ 등 다양한 코미디 프로그램을 연출했던 인덕대 방송연예과의 김웅래 교수는 “웃음을 만드는 개그맨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남성 개그맨은 대담하고 공격적이며 행동이 분명한 소재를 가져오지만 여성은 편안하면서도 정적인 내용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배역도 남성은 갈등 구조가 분명한 역할을 맡으려 하지만, 여성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화합하는 역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남성 시청자들은 코미디의 지배적 포맷인 ‘왕따 코드’에 익숙한 반면 여성은 그에 불편을 느낀다”며 “여성은 수다를 통해 속마음을 털어내는 데서 유머를 찾는다”고 말했다.

○ 왜 다른가?

목원대 류종영 교수가 쓴 ‘웃음의 미학’에 따르면 남성의 유머 구조는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홉스의 ‘웃음의 우월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홉스는 저서 ‘인간천성’에서 “웃음은 다른 사람의 결함이나 우리 내부에 있는 우월함에 대한 갑작스러운 ‘착상’으로 일어난다”고 분석했다. 우월의식에 사로잡히거나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에서 유머가 생성된다는 것.

“실수나 결점이 웃음을 만든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남성 유머 코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성의 유머는 다르다. 특정 상황이 발생했을 때 상하관계나 우월의식보다 본인의 주관적인 입장이 일치할 때 웃는다. 여성의 유머를 설명하는 데는 19세기 독일 사상가 장 파울의 ‘주관적 웃음이론’이 유효하다.

그의 저서 ‘미학 입문’에 따르면 “사람이나 사물 자체가 웃긴다기보다 주체인 자신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때 유머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명지대 여가정보학과의 김정운 교수는 남녀 유머 코드가 다른 이유를 사회인류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했다. 인류의 수렵 시대 외부에서 끊임없이 싸움을 하는 전사였던 남성은 상대를 놀리는 것도 하나의 경쟁 수단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남성에게 싸움과 유머는 하나의 패키지인 셈이다.

현대의 남성도 상황이나 사물을 권력 관계로 파악하기 때문에 타인을 만나면 순식간에 상하 관계를 결정한다. 자신이 희생양이 되는 ‘자학 개그’를 남성들이 자주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부족 공동체에서 결속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던 여성에게 유머는 관계를 형성하고 우정을 만들고 지지를 끌어내는 도구였다. 현대 여성도 상대를 권력 관계보다 의사 소통의 파트너로 대한다. 이로 인해 여성의 유머는 서로의 내러티브를 공유하는 대화 속에서 발생한다.

김 교수는 “남성은 상하 관계가 명확하지 않으면 당황하는 반면 여성은 수평적 관계의 대화를 선호한다”며 “여성이 동등한 입장에서 만나는 파티를 좋아하고 남성이 승패가 갈라지는 격투기나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어떻게 실험했나?:

서울 강동구 천호동 현대백화점 인력개발원에서 남녀 직원 각각 20명이 참석했다. 이들에게는 실험 목적이나 의도를 알려주지 않았다. 먼저 30여 분간 SBS TV 개그프로그램인 ‘웃찾사’의 코너 3편과 토크쇼 ‘야심만만’(지난해 12월 15, 19일 방영분)의 일부를 보여 줬다. 웃찾사에서는 슬랩스틱 요소가 강한 ‘퀴즈야 놀자’와 ‘사스’를 비롯해 이야기가 있는 극 형식을 갖춘 ‘행님아’ 등 3편을 선정했다. 야심만만은 출연자들의 대화를 통해 내러티브를 풀어가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선정됐다.

두 프로그램을 보여준뒤 설문지를 통해 각 코너와 출연진에 대한 호감도 및 흥미도를 조사했으며 일부 직원에 대한 심층인터뷰를 병행했다. 각 코너에 대한 흥미도와 공감도는 11점 리커트 척도로 조사했으며 심층인터뷰를 통해 그 이유를 진단했다.

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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