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열차추돌 왜 났나…신호기는 꺼지고 교신까지 혼선

  • 입력 2003년 8월 8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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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과 원칙이 ‘탈선’하면서 또다시 빚어진 안타까운 참사였다.

8일 아침 대구 고모역∼경북 경산역 구간에서 발생한 무궁화호 열차의 화물열차 추돌사고는 철도안전의 총체적 문제점을 다시 드러낸 부실 그 자체였다.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 대구 수성경찰서는 이번 사고가 △지령실과 기관사의 무선교신 혼란 △기관사들의 전방주시 태만 △통신식 운행에 따른 안전수칙 위반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철로를 가로막은 화물열차=경부고속철을 위한 신호기 교체 공사로 인해 이날 사고 구간은 자동신호기가 작동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에 따라 역 사령실과 기관사들은 무선교신을 통해 상황을 주고받으며 ‘통신식’으로 운행했다.

그러나 자동신호기가 시험작동 중이어서 꺼졌다 켜졌다 한다는 사실을 화물열차 기관사 최태동씨(50·경남 마산시)는 모르고 있었다. 그는 “오전 7시2분 고모역을 출발한 뒤 신호기가 자주 바뀌어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시험 중 들어온 자동 점멸신호기를 정상신호로 혼동했다는 것. 최씨는 “고모역 사령실 직원이 정상적으로 가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고모역 직원이 내린 이 지시는 “작업 구간이므로 신호를 무시하고 정상 속도로 가라”는 뜻이었다. 결국 무선교신 혼란 때문에 화물열차는 철로에 거대한 장애물처럼 버티고 서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은 뒤따라오던 무궁화호 열차에는 제대로 연락이 가지 않았다. 무궁화호 열차 기관사 김기용씨(36·김천기관차 승무사무소)는 “화물열차 출발 6분 뒤 고모역을 지나칠 때 지령실로부터 화물열차가 정차해 있다는 내용을 통보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무선교신 오해와 관련해 고모역 사령실 직원과 기관사 사이에 주고받은 무선 교신 녹음 테이프를 확보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또 운전지령을 책임진 철도청 부산사무소 사령실 직원 박모씨(37)의 과실 여부도 조사 중이다.

▽나사 풀린 시스템=만약 부산 사령실과 역 사령실의 교신이 정확했고, 이를 기관사가 제대로 받았다면 무궁화호 열차는 화물열차가 경산역에 도착할 때까지 고모역에서 출발하지 않고 기다렸어야 했다.

부산 사령실측은 “통신식으로 운행할 경우에는 역장 책임에 따라 운행 지시를 해야 한다”며 “무궁화호 열차를 주의해서 통과시키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산역과 고모역측은 “부산 사령실의 지시에 따라 무궁화호를 통과시켰다”고 반박했다. 역 관계자들은 “모니터를 볼 수 있는 부산 사령실이 철로 상황을 더 잘 알 수 있다”며 지령실과 기관사들의 상황 파악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경찰은 이와 함께 고모역과 경산역 사이에는 1개 열차만 통과해야 하는데도 화물열차가 경산역에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궁화호 열차가 고모역을 통과한 것은 안전수칙을 어긴 것으로 보고 이 부분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고 있다.

경찰은 “무궁화호 기관사들은 안개가 짙게 끼어 앞을 보기 어려웠다고 주장하지만 안개가 엷었고 직선 구간이라 500m까지는 시계 확보가 충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출근길 날벼락=사고열차 승객(172명) 가운데 발전차량과 연결된 6호 객차의 피해가 컸다. 열차가 화물열차를 추돌하는 충격으로 6호 객차 연결 부분이 5.3m가량 푹 찌그러들었다. 사망자는 6호 객차 입구쪽에 탔던 승객들이다.

이 중 어머니 정모씨(29·여·경북 성주군 성주읍), 누나(8)와 함께 여행하던 이석현군(4)이 숨져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정씨 가족은 이날 새벽 경북 왜관을 출발해 부산 해운대의 수족관으로 체험학습을 가던 길이었다. 다리를 크게 다친 정씨는 “아들이 크게 다쳐 수술을 받고 있다”는 친척들의 거짓말에 “수술하면 피가 부족할 텐데…”라고 걱정하며 연방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고 발생 3시간 뒤 아들은 카메라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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