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원작자 이문열씨 '명성황후' 런던공연을 보고

  • 입력 2002년 2월 3일 17시 33분


《소설가 이문열씨가 1일부터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의 해머스미스 극장에서 영어 버전으로 공연중인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고 관람기를 보내왔다. 그는 이 작품의 원작자다.》

뮤지컬의 ‘본향(本鄕)’인 영국 런던의 웨스트엔드에서 ‘명성황후’를 봤다.

웨스트엔드의 한 복판인 피카딜리는 아니지만 ‘명성황후’의 공연장인 해머스미스 극장도 시작으로는 나쁘지 않다. 해머스미스 극장은 ‘비틀스’를 비롯한 여러 대중 스타들이 즐겨 공연장소로 애용해온 곳. 3000석이 넘는 객석과 고전적 품위까지 내비치는 공간은 열악한 국내 공연시설에 자주 시달려온 단원들에게는 오히려 과분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정작 이 공연을 기대와 불안으로 서성이며 기다리게 한 것은 모든 대사와 가사가 영어로 바뀐 일이었다. 교민이 1만2000여명에 불과한 도시이고 보면 공연의 승패는 어차피 현지인 관객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현지의 사정보다는 우리 뮤지컬의 본격적인 세계화라는 의미가 더욱 강조된 버전의 전환이었다.

따라서 막이 오른 뒤에도 줄곧 신경이 쓰이는 일은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공연의 내용보다 옆 좌석에 앉은 현지인 관객들의 반응 쪽일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가사의 전달은 별 무리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알아들었다고 해서 그게 바로 감동을 담보하지는 않았다.

특히 20년의 숨가쁜 우리 근대사를 압축하느라 현란한 볼거리의 나열처럼 되어버린 제1막이 끝났을 무렵에는 솔직히 기대보다 불안에 더욱 마음 졸였다. 휴식 시간에 빈 자리가 그 만한 수의 관람포기처럼 느껴져 가슴이 섬뜩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제 2막에 들어서면서 관객들의 내면을 흐르는 감정의 전환은 피부로 느껴질 만큼 뚜렸해졌다.

극장 안을 짓누르듯 몰입의 기운이 퍼지더니 그것은 차츰 뜨거운 감동으로 번져갔다. 마지막 명성황후의 아리아에 이은 대합창에 이르자 현지인 관객들이 보여준 것은 국내에서 연출된 그 어떤 감동의 순간에 못지 않았다.

이 작품의 연출자인 윤호진씨와 ‘에이콤 인터내셔널’ 단원들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이어 또 한번 놀라운 일을 해냈다.

공연이 끝난 뒤 영국의 BBC 방송에서 관객들 여럿에게 소감을 물었는데.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것은 “환상적(Fantastic)”, “‘왕과 나’보다 낫다(Better Than ‘King And I’)”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결코 예절바른 영국인들의 의례적인 찬사거나 아첨섞인 과장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오히려 피카딜리에 바로 서지 못하고 런던의 서쪽 끝 해머스미스 극장에서 시작한 이들의 이 공연이 언젠가는 이렇게 기억되리라 믿는다.

“그들이 출발은 심히 미약하였으나 뒷날은 참으로 창대(昌大)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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