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성매매 또 무죄선고 거센 논란

  • 입력 2001년 8월 31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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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가출한 여고생과 성관계를 맺고 돈을 건넨 혐의로 기소된 20대 남성에게 또다시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은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신상공개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청소년 성매매에 관한 논란을 더욱 가열시킬 전망이다.

돈의 ‘대가성(對價性)’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 ‘청소년 성매매’로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지만 청소년 보호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사건 및 판결내용〓고시생 강모씨(27)는 올해 5월 인터넷 화상채팅으로 알게 된 가출소녀 최모양(17)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 성관계를 맺었다. 강씨는 다음날 최양에게 현금 5만원과 고시원 식당 식권 6장을 건넸다. 강씨는 청소년 성매매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강씨는 재판 과정에서 “최양이 먼저 ‘잘 곳을 제공해 달라’며 전화로 요청해 만났고, 건네준 돈은 생활비에 보태 쓰라는 의미였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최양도 “화면상으로 보니 잘 생긴 남자여서 별다른 목적 없이 만났다”며 성매매 사실을 시인했던 검찰 진술을 번복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지법 형사4단독 윤남근(尹南根) 판사는 31일 “두 사람이 사전에 성관계나 이에 대한 대가를 약속한 적이 없으므로 청소년 성매매로 볼 수 없다”며 강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윤 판사는 7월 6일에도 15세 가출 소녀와 성관계를 맺고 숙식과 현금 2000∼1만4000원을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20대 성인남성 5명에 대해 “대가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었다.

▽찬반의견〓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2조2항은 청소년 성매매범을 ‘청소년에게 금품이나 편의제공 등 대가를 제공하거나 약속하고 성관계를 맺은 자’로 규정하고 있다.

황덕남(黃德南) 변호사는 “형사처벌에 관한 법은 해당 요건에 따라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며 “강씨가 사전에 대가를 약속한 적이 없으므로 법에 따르면 당연히 무죄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YMCA청소년성교육상담실 이명화(李明花) 실장은 “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 범죄자의 신상공개까지 시도되는 마당에 법원이 성인 중심의 보수적 관점에서 판결을 내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법조인은 “외국에서는 성관계 대상이 16∼18세 미만인 청소년의 경우 대가성이나 본인의 동의 여부에 관계없이 무조건 처벌이 가능하다”며 “이런 사건은 입법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보호위원장을 지낸 강지원(姜智遠) 서울고검 검사는 “형법상 청소년에게 위계(僞計)나 위력으로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은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다”며 “판단력이 약해 작은 호의에도 넘어가는 청소년에 대해 성인과 동일한 차원에서 엄격한 대가성을 요구하는 것은 이런 법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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