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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의 다빈치

Posted January. 30, 2020 08:24,   

Updated January. 30, 2020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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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치아 화파’의 창시자라 불리는 조르조네는 짧은 생을 살다 간 베일에 가려진 화가다. 그가 화가로 활동한 기간은 15년에 불과했지만 16세기 전기 작가 조르조 바사리는 그를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비견될 위대한 화가로 평가했다.

 그의 대표작 ‘폭풍’도 그의 생애만큼이나 수수께끼로 가득하다. 지난 수세기 동안 분석되고 연구되었지만 이 그림의 주제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멀리 도시가 보이는 전원을 배경으로 오른쪽에는 나체의 여인이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긴 막대기를 든 왼쪽의 남자는 미소 띤 얼굴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동안 학자들은 이 남자가 군인, 목동, 집시 또는 미혼 남성 클럽의 일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리스의 신화나 목가 소설에 나오는 장면이라는 해석도 있고, 성서 속 아담과 이브, 그들의 아들 카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림 속 남자는 화가 자신이고 여성은 화가가 짝사랑한 여인이라는 해석도 있다. 사실 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미스터리한 두 인물이 아니라 번개가 내리치는 풍경이다. 이건 대부분의 미술사가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화가는 두 인물을 화면 양가로 배치해 감상자들이 풍경에 집중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미술의 주인공은 인물이라고 생각하던 시절 그는 인물보다 풍경을 더 강조해 그림으로써 최초의 풍경화에 도전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게 바로 조르조네 그림의 혁신성이다. 그의 그림은 틀에 박힌 종교화나 초상화에 싫증이 난 후원자들을 단숨에 매료시켰고 그의 명성은 베네치아를 넘어 이탈리아 전역에 자자했다.

 한창 명성을 떨치던 1510년, 안타깝게도 그는 페스트에 감염돼 33세로 세상을 떠났다. 풍경화로 당대 미술의 혁신을 가져왔던 조르조네의 성과는 동료 화가 티치아노가 계승해 발전시켰다. 조르조네의 상상력 가득한 인물화와 빛과 색채를 강조한 부드럽고 감성적인 풍경화는 훗날 낭만주의, 인상파, 야수파에까지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