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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 형상에 절로 미소...인골 장식엔 구원의 갈구 서려

아기 예수 형상에 절로 미소...인골 장식엔 구원의 갈구 서려

Posted October. 11, 2019 07:40,   

Updated October. 11, 2019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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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코와 오스트리아는 솔직히 순례자가 몸살 나기 십상이다. 그만큼 볼 게 지천이다. 주요 관광지만 돌아도 은총이 쏟아진다. 한데 뷔페처럼 뭘 먹었는지 헷갈린다. 오늘 마주한 성당이 어제 만난 성당이 아니라 자신하기 어렵다.

 그래도 가다듬고 보면 각자에게 맞는 보석이 널려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돌아보고, 21세기 수도원의 흐름도 짚을 수 있다. 그 대신 딱 하나만. 시간이 빠듯하면 건너뛰어도 되니 찬찬히 걸으시길. 풀 냄새 돌담 냄새 스쳐 지나지 말고.

○ 아이는 의구(依舊)한데 인골도 그 자리에

 바로 무장해제다. 진중한 성당에서 입꼬리가 올라가다니. 겨우 45cm인 자그만 조각상이 이리도 따사로울 줄이야.

  ‘프라하의 아기 예수’는 실은 위치가 애매하다. 관광 핵심 구시가에서 트램(노면전차) 타고 네댓 구역은 간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면 필수코스라 꼽기 힘들다. 근데 마주하면 잘 왔다 싶다. 2층에 전시한 한복도 앙증맞다. 아기 예수는 바비인형처럼 때맞춰 옷을 갈아입는다.

 왜 그리 두근거릴까.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하느님이 아기의 모습으로 당신의 친밀함을 보여 준다”(2009년)고 했다. 폴라 신부도 고개를 끄덕였다. “심판과 희생도 숭고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그것만이 아니죠. 아가의 순수하고 인간적인 형상에 끌리는 게 아닐까요.”

 하나 더. 성당을 관장하는 가르멜회는 1971년부터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어린이들을 돕고 있다. 유치원과 학교도 운영한다. 이렇게 깊은 뜻을 실천하니 후광이 살아있다. 아기 예수는 17세기 스페인에서 만들어졌단다. 그러나 아기 예수는 미래를 비추기에 더 아름답다.

 반면 쿠트나호라에 있는 ‘세들레츠 해골 성당’은 완벽하게 극단에 서 있다. 들어서자마자 눈살이 찌푸려진다. 끝도 없는 인골. 피라미드처럼 쌓인 뼈 무덤은 그러려니 했다. 두개골로 문양을 꾸며놓은 건 뭔 악취미람.

 하지만 잠깐 공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이 해골들은 주로 14세기 흑사병으로 숨진 3만여 시신에서 수습했다 한다. 고통 아래 마지막까지 구원을 갈구했을 터. 성당은 ‘하느님의 집’이다. 인간을 위한 화장실도 마련치 않는다. 그곳에 빈부귀천 상관없이 의탁한다면 그보다 더한 축복이 있을까. 성당에 새겨진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더는 유효하지 않다. 그들은 생사를 뛰어넘어 영원의 안식처를 몸 바쳐 이뤄냈다.

○ 위스키와 포도주,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서 들른 두 수도원은 다소 생경하다. 왕실에서 지은 건물답게 거창하고 화려하다. 묵상과 검박함을 기대했다가 실망스럽다.

 빈에서 약 79km 떨어진 ‘성 베네딕토 멜크 수도원’은 특히 북적댄다. 움베르토 에코(1932∼2016)가 소설 ‘장미의 이름’의 영감을 얻은 곳으로도 유명하니. 심지어 900여 명이 수학하는 명문 사립학교까지 운영한다. 학생과 관광객 물결에 수도자는 드문드문.

 이 땅의 수호성인 레오폴드 3세가 지은 ‘아우구스티노회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도 엇비슷하다. 왕궁이나 대형 박물관 같다. 물론 둘 다 볼 것 많아 좋긴 한데…. 솔직히 수도원에서 담근 위스키나 와인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렇지만 이런 ‘개방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미덕이다. 문 걸어 잠그고 자기들만 깨달으면 뭐하나. 클로스터노이부르크는 포도주 수입의 10% 이상을 사회사업에 쓴다. 젊은 미술가를 지원하는 ‘성 레오폴드 평화상’도 주관한다. 열린 종교는 갈수록 강해진다.

 멜크 역시 시대와 발맞춰 간다. 문화관광담당인 마르틴 로테네더 신부는 “비(非)가톨릭 신자라도, 심지어 이슬람교도여도 수도원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학교도 신입생 선발 때 종교를 따지지 않는다”고 했다. 위스키가 켜켜이 꿀처럼 달달해졌다.


정양환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