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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 싸움에 경제를 희생양삼은 反자유무역적 韓日갈등

정치•외교 싸움에 경제를 희생양삼은 反자유무역적 韓日갈등

Posted July. 03, 2019 07:42,   

Updated July. 03, 2019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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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어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와 관련해 “국가와 국가의 신뢰관계로 행해온 조치를 수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로 신뢰관계가 손상됐기 때문에 내놓은 보복 조치라고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방침에 대해선 “WTO 규칙에 정합적이다. 자유무역과 관계없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은 수출규제의 이유로 ‘신뢰관계 훼손’을 들면서도 보복조치가 아닌 ‘안보를 위한 수출관리’라는 앞뒤가 안 맞는 이율배반적 설명을 하고 있다. 외교적 사안을 경제적 보복으로 대응하는 치졸한 방식이지만 WTO 제소를 의식해 표면적으로는 보복조치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일본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규제품목 확대, 관세 인상, 비자 발급 제한 등 추가 보복 조치도 흘리고 있다. 일본 내에선 한일 갈등으로 결국 승자는 중국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아베 총리가 직접 나서 결전을 독려하는 모양새다.

 우리 정부의 대응은 안이하고 무력하기만 하다. 일본은 진작부터 경제적 보복을 예고했지만 일본 경제에도 타격인 만큼 실행 가능성이 낮다고 보면서 대응책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 당장 우리 기업들의 비명소리는 커지는데 정부의 유일한 대응인 WTO 제소는 최종 판결까지 2년 넘게 걸려 실효성이 의문이다. 또 다른 대응책으로 우리 국민의 일본 여행 제한이 거론되지만, 이 카드는 한일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 뿐이다.

 문제는 이처럼 극한으로 치닫는 갈등을 풀기 위한 외교 채널이 마비된 상태라는 점이다. 그간 정부는 ‘대법원 판결에 행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며 한일 외교를 방치했다. 일본도 해석의 논란이 있는 한일기본조약을 들어 ‘국제법 위반’이라고 반발만 했다. 한일이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자”면서도 서로 마주보지도 않고 국내 지지층만 곁눈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이래 동해상 일본 초계기 사건 등을 거치며 한일 양국은 외교는 제쳐두고 자존심을 앞세운 감정싸움만 벌여왔다. 특히 거의 노골적으로 반한 감정을 부추겨온 아베 정부는 이젠 애꿎은 경제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한일 모두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오늘날의 경제성장을 이룬 대표 국가다. 그런 나라 사이에 자유무역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정치적 목적의 경제핍박 행태가 벌어지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한일 모두 국내 정치와 지지층 여론을 의식한 감정적 대응은 국제사회의 비웃음만 살 뿐이며 국익을 심각하게 해치는 자해행위다. 이제부터라도 냉정을 찾고 해결책을 찾기 위한 진지한 외교적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