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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자동차 리콜법

Posted July. 01, 2019 07:53,   

Updated July. 01, 2019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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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우리나라 국회가 통과시킨 법은 679건이다. 1년에 100건이 채 안 되는 영국, 일본 등과 비교해도 많지만 365일 내내 국회를 열어 하루에 2건씩 꼬박 공부해야 하는 규모라는 점에서 놀랍다. 1년에 절반 정도 국회가 열리는데 여야가 서로 싸우느라 문을 못 여는 날이 수두룩하니, 대체 이 많은 법을 언제 심사할까. 혹시라도 잘못된 법이 통과될 가능성은 없을까.

 실제로 2011년에 개정된 자동차 리콜법은 형사처벌 구조가 완전히 잘못됐지만 잘못인 줄도 모르고 통과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최근 밝혀졌다.

 그해 8월 22일 당시 국토해양부는 자동차관리법을 자동차정책기본법과 자동차안전법으로 나눈다는 입법예고를 했다. 기존 법이 단순 관리행정 위주라 국민이 불편하고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비스행정의 개념이 도입됐고, 안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이때 리콜법도 바뀌었다. 리콜법은 자동차관리법 31조에, 처벌은 78조에 규정돼 있다. 원래는 31조 1항에 자발적 리콜을, 2항에 강제 리콜을 정의해뒀다. 2011년에 법을 개정하면서 2항이 3항으로 밀리고, 그 대신 2항에 업계가 자발적 리콜 규정에 따라 시정 조치를 하지 않으려면 국토부 장관에게 면제를 신청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혼란이 생겼다. 당초 처벌 규정은 강제 리콜 명령을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하도록 돼있었다. 그런데 법이 개정되면서 항목이 3개로 늘 때 처벌 규정이 느닷없이 1항인 자발적 리콜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다. 현재 자동차 리콜법은 업계가 자발적 리콜을 제때 하지 않으면 10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도록 돼있다. 그런데 이보다 센 위반인 국토부 장관의 강제 리콜 명령을 어긴 경우에는 처벌 규정이 없다.

 그동안 자동차업계는 법이 이렇게 바뀐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얼마 전 BMW 화재사고로 리콜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알게 됐다. 업계는 “입법 과정에서 누가 헷갈렸는지 알 수 없지만 명백한 오류”라고 주장한다. 리콜이라는 제도는 원래 제조업체가 결함을 자발적으로 고치도록 유도하지만 안전상 심각한 결함은 국가가 나서서 강제하라고 도입된 것이기 때문에 국가의 명령을 거부했을 때 형사처벌을 내리는 게 맞다. 해외 어느 주요국도 자발적 리콜에 대해 형사처벌하는 곳은 없다. 하지만 국토부는 오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강제 리콜 명령을 어겼을 때 제작사에 판매 중단을 명령할 별도 규정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토부 주장이 맞다 하더라도 이처럼 논쟁적인 법을 바꿀 때 공개 논의 한번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또 현행법은 심각한 결함에 대해 국가의 책임이 빠져 있다. 어느 대목에서 국민의 안전이나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건지 모르겠다.

 처벌에 관한 규정이 해석의 여지가 크다는 점은 특히 문제다. ‘안전 운행에 지장을 주는 결함을 안 날로부터 지체 없이 시정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게 자발적 리콜 규정이고 ‘은폐 축소 거짓 공개하거나 지체 없이 시정 조치 아니한 자를 형사처벌한다’는 게 처벌 규정이다. 안전 운행에 지장을 주는 결함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자동차 몇 대가 문제가 생겨야 결함으로 인정하나. 결함을 아는 건 실무자가 기준인가, 최고경영자가 기준인가. 무엇 하나 명백하지 않다. 이처럼 모호한 기준으로 형사처벌까지 내리는 건 명백한 위헌이라고 학계는 본다.

 다행히 김상훈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문제점을 인지하고 자동차 리콜법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국토부는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법 개정에 참여해야 한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