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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음악시장, 재밌는 세상 아닌가

Posted June. 14, 2019 07:32,   

Updated June. 14, 2019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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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18일 동안. 18파운드(약 2만7000원)면 우리가 그 몸값을 정말 지불했어야 했는지 알아낼 수 있을 거다. 이 작업물을 공개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 스마트폰 다운로드는 금하도록. 재미있는 세상이지 않은가?’(조니 그린우드)

 영국 밴드 ‘라디오헤드’는 이달 초 지독한 해킹 피해를 입었다. 용의자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그들의 역사적 명반 ‘OK Computer’(1997년) 시절의 미공개 시험 녹음분을 털었다. 그 뒤 즉시 라디오헤드 측을 협박했다. 15만 달러(약 1억7700만 원)를 내놓지 않으면 인터넷에 음원을 무료로 풀어버리겠다고. 무려 18시간 분량의 음악을 말이다.

 #1. 밴드는 돈 가방을 준비하는 대신 반격에 나섰다. 희대의 밴드다운 전대미문 방식으로. 서두에 옮긴 것이 기타리스트 그린우드의 페이스북 성명 일부. 밴드는 음원 공유 서비스 ‘밴드캠프’에 밴드 페이지(radiohead.bandcamp.com)를 개설한 뒤 해킹당한 음원 전부를 올리기로 했다.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단, 18일간의 무료 스트리밍 기간 이후에도 들으려면 18파운드를 주고 다운로드해야 한다.

 #2. 라디오헤드가 해킹 대응책으로 선택한 플랫폼인 밴드캠프는 200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설립된 신개념 디지털 음악 판매 서비스다. 누구나 자기 음악을 원하는 가격에 내놓을 수 있는 온라인 장터다. 겸손한 사람은 공짜로, 자신 있는 사람은 곡당 100만 원에도 내 음악을 소비자에게 팔 수 있다. ‘멜론’에 모든 곡을 넣어두고 같은 가격에 판매하는 국내 시장과 많이 다르다.

 #3. 정보기술의 발전이 음악 시장을 빠르게 변화시킨다. 음악 소비의 매체도 행태도 급변했다.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는 발매 당시 CD, LP, 카세트, MD로 나왔다. 이 중 MD는 CD를 대체할 강력한 매체로 당시 주목받았다. 1992년 소니사(社)가 세상에 내놓은 앙증맞은 물건. 소니의 예상은 그러나 틀렸다. MD는 MP3 앞에 주저앉았다. 2011년 소니는 끝내 MD 생산과 판매 중단을 선언했다.

 #4. 라디오헤드는 해킹된 녹음분을 공개하며 앨범 제목까지 달았다. ‘MiniDiscs [Hacked].’ 그도 그럴 것이, 앨범 표지는 공(空)MD 모양이다. 보컬 톰 요크가 빼곡히 지렁이 글씨로 곡 제목을 적어둔 원본 녹음 MD의 느낌을 살렸다. 이로써 라디오헤드는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는 대신 되레 돈을 벌게 됐다. 제대로 된 복수다. 6555명만 유료 다운로드를 받으면 내줄 뻔한 돈 15만 달러를 반대로 챙기게 된다. 하루에 365명만 내려받으면 된다. 게다가 수익금은 환경보호 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복수이되 멋지고 쿨한 복수다.

 #5. 시장의 변화는 음악을 알리는 방식도 바꿨다. 히트 곡은 이제 더 이상 TV에서 나오지 않는다. TV에 나오거나 거대한 팬덤을 가진 가수도 아닌데 국내 음원 서비스 최상위권에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히트 곡들이 근래 많아졌다.

 “A 그룹은 페이스북 마케팅에 수백(만 원) 썼대. B 가수는 아마 돈 천 넘게 썼을걸?”

 한 음반사 관계자의 말이다. 홍보를 위해 지난 세대에 TV, 라디오, 신문에 투입하던 노동과 자본을 음반사들은 이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쏟아붓는다. ‘음악은 듣고 다니니?’ ‘요즘 이 노래 핫해’ 같은 제목을 단 페이스북 페이지는 수백만 팔로어를 거느린다. 한 자릿수 시청률의 지상파 TV, 수십만 명이 구독하는 신문을 가뿐히 넘는 영향력이다. 이런 페이지에 기백만 원을 주며 ‘이 노래 한 번만 소개해 달라’고 하는 것은 요즘 가요계에 만연한 마케팅 기법이다.

 #6. 수십 년째 음악을 쫓아온 이로서 새로운 히트 곡 공식은 어지럽다. 적응이 잘 안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CD와 MD의 시대보다 지금이 18배는 행복하다는 것이다. MP3 포맷 발명과 디지털 음악 시장 형성은 음악 팬에게 벼락같은 축복. 프로메테우스의 불이다. 모든 음악을 같은 가격에, 또는 월간 무제한 정액제로 들을 수 있다니….

 본디 상품이란 품질과 이미지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똑같은 크기의 가방을 3만 원에 살 수도 있지만 명품으로 사려면 3000만 원을 줘야 한다. 음악 시장은 아니다. 조악한 표절 곡도, 역사적 명곡도 가격이 같다. 잘만 고르면 고전부터 신상(신제품)까지 다양한 명품 음악을 같은 값에 무한히 들을 수 있다. 같은 가수의 비슷한 곡만 평생 듣는 것은 수천만 곡이 꿈틀대는 음악 시장에 대한 무시이자 심대한 인생 낭비다. 그러나 이번에는 라디오헤드의 18시간에 18파운드를 지불하려 한다. 재미있는 세상이지 않은가?


임희윤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