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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가도 빛나는…보석같은 ‘재즈 디바’ 박성연

세월 가도 빛나는…보석같은 ‘재즈 디바’ 박성연

Posted November. 26, 2018 07:31,   

Updated November. 26, 2018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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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대 중반의 ‘디바’는 멋지게 미끄러져 들어왔다. 승용차에서 내려 지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휠체어를 타고 가게 문을 통과해 무대 위 마이크 앞까지 20m. 멈추지 않았다. 레드카펫은 없었다.

 23일 저녁,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재즈 클럽 ‘디바야누스’. 번화가에서 한 블록 떨어진 이곳에 한국 재즈의 여제(女帝)가 당도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디바가 실내에 입장하자 30여 관객의 고개가 일제히 입구 쪽으로 쏠리고 뜨거운 갈채가 쏟아졌다.

  ‘또 하나의 신부, 또 한 번의 6월/또 한 번의 화창한 허니문∼’

 숨도 고르지 않은 채 시작한 첫 노래는 흥겨운 재즈 곡 ‘Makin Whoopee’. 은평구의 요양병원에서 2시간 가까이 달려온 디바에게는 대기실도 필요 없었다. 숨도 고르지 않은 채 바로 마이크에 불어넣은 노래가 경쾌한 스윙 리듬에 사뿐히 올라탔다. 객석에서 탄성이 터졌다.

 한국 1세대 재즈 보컬 디바 박성연 씨(75)에게 이날은 생일이나 진배없었다. 그가 신촌에 클럽 ‘야누스’를 오픈한 지 꼭 40주년 되는 날. 기념 무대였다. 이날 그가 입은 자주색 금박이 화려한 의상이 돋보였다. “수십 벌 있던 무대의상을 다 버렸어요. 제일 좋아하는 것만 이렇게 남겨둔 거예요. 오늘 같은 날 입으려고…. 허허.” 

 20년 전부터 신장투석을 받아온 박 씨는 끝내 3년 전 입원을 하게 됐다. 클럽 운영을 후배 재즈 가수 말로에게 맡겼다. “제 손으로 후배들을 위한 무대를 지키고 싶었어요. 근데 제가 그날 아파서 응급실에 간 뒤 여태 못 돌아오고 있네요.”

 공연 뒤 만난 디바는 훌륭한 무대를 선보였음에도 연방 “연습을 못해 관객들께 죄송하다”고 했다. 요양병원에서는 6인실을 쓰기에 음악을 들을 형편도 되지 못한다. 마지막 곡은 ‘My Way’. 마지막 가사 ‘I did it my way∼’를, 디바는 부른다기보다 토해냈다. “늘 이게 마지막 공연이다, 하는 생각으로 노래해요. 저의 인생을 생각하면서요.”

 그는 신촌에서 야누스의 문을 열던 1978년 11월 23일을 어제처럼 기억한다. “주문한 의자와 탁자가 제때 도착하지 않아 손님들이 서 계셨어요. 망연자실해 있는데 클럽 이름을 지어주신 영문학자 문일영 선생께서 제 등을 토닥이며 ‘괜찮아, 괜찮아’ 해주셨던 게 생생해요.”

 국내 1세대 재즈 연주자들에게 ‘야누스’는 성지였다. “정기공연을 하는 재즈 클럽은 저희가 처음이었으니까요. 바깥에서 최루탄이 나는 것도 모르고 연습에 몰두하곤 했죠.”

 그러나 ‘야누스’는 늘 적자를 면치 못했다. 신촌, 대학로, 청담동을 거치며 이곳에 자리했다. 야외 재즈페스티벌에는 수만 인파가 몰려도 한국 재즈 연주자들의 터전에는 하루에 5∼7명의 관객이 전부다. 그는 적자 연속인 가게를 후배에게 물려준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야누스’의 끝을 상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후회는 없을까. “네. 후회는 안 해요. 난 결혼도 안 했잖아요. 그것도 후회 안 하고. 아무것도 후회 없어요. 감사할 뿐이에요.” 뭐가 그렇게 감사하다는 걸까. “야누스요.”

 이날 선후배 재즈 연주자들의 축하 무대는 자정까지 이어졌다. 1세대 재즈 피아니스트 신관웅 씨는 ‘한오백년’을 다이내믹한 재즈로 편곡해 들려줬다. 누군가에겐 성지이지만 그런 사연을 몰라도 좋다. 분위기 좋은 재즈 바, 야누스는 오늘도 문을 연다. 02-523-3934


임희윤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