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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환 택리지 정본 완역...8년의 땀 마침내 결실

이중환 택리지 정본 완역...8년의 땀 마침내 결실

Posted November. 07, 2018 07:25,   

Updated November. 07, 2018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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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환(1690∼1756)은 사대부가 사는 곳은 인심이 고약하고, 사대부가 살지 않는 곳을 주거지로 선택해야 한다고 극단적인 얘기를 했지요. 당파로 갈라져 다른 당파를 인정하지 않고, 평민을 윽박지르기만 하는 조선 사대부에게 경종을 울리려 한 겁니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57)가 2012년부터 7년의 작업 끝에 200여 종에 이르는 이중환의 ‘택리지’ 이본을 정리하고 한글로 옮긴 ‘완역 정본 택리지’(휴머니스트)를 펴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만난 안 교수는 “이중환이 ‘조선에는 살 만한 땅이 없다’고 한 건 사대부들의 당파에 따른 편 가르기, 지역과 사농공상의 신분 차별에 절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중환은 남인 명문가 엘리트 출신이었지만 노론이 경종(景宗)의 독살을 기도했다는, 이른바 ‘목호룡(睦虎龍)의 고변’에 휘말려 30대 초반에 죽을 지경까지 고문을 당하고 정계에서 축출됐다. 택리지는 그가 1751년경 국토의 지리 현상을 전면적으로 다룬 인문지리학의 고전이다.

 지금까지 번역된 택리지는 거의 1912년 최남선이 편집·간행한 광문회본 택리지를 저본으로 삼았는데, 오탈자나 후대 첨가된 이야기 등이 적지 않았다. 최남선이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내용을 일부 편집하기도 했다.

 일례로 기존에 ‘복거론(卜居論)’에서 “덕유산의 정기가 서린 줄기는 서쪽으로 뻗어서 마이산과 추탁산이 되고”라고 번역됐던 구절을, 안 교수는 “…마이산이 되고, 거칠고 탁한(추濁·추탁) 줄기는 남쪽으로 뻗어서”라고 고쳤다. ‘추탁’ 앞쪽에 접속사 ‘이(而)’가 있는 판본이 옳다고 봤기 때문이다. 책에는 이 같은 교감 과정을 설명한 주석만 800개 가까이 달았다. 그것도 10분의 1로 간추린 것이다. 광문회본에서 ‘함경도’ 분량의 30% 가까이를 차지하는 ‘함흥차사’ 이야기도 후대 첨가된 것으로 보고 넣지 않았다.

 “한두 글자만 틀려도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국학에서 정본화는 기초이고 근간입니다. 정확한 판본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연구가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되지요.”

 안 교수는 “유럽이나 일본은 주요 고전의 정본화를 오래전에 완료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거의 안 돼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 중요성과 소모되는 공력에 비하면 우리 학계는 정본화 작업에 대한 대접이 박하다. 연구 성과 평가는 주로 논문 편수 위주다. 저술이나 번역도 약간 인정하지만 이본을 정리하고 정본 텍스트를 마련하는 일은 거의 성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연구비 지원도 받기 어렵다. 안 교수는 이본을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시력마저 나빠졌다.

 택리지의 정본화는 박사과정 연구자들과의 공동 작업으로 가능했다. 각 지역 서술에 등장하는 당대 유력 가문이 어느 집안인지도 일일이 찾아냈다.

 “택리지는 소외된 남인의 시각을 담은 당론서, 경제지리서, 여행가이드 등 성격이 여럿입니다. ‘전시에 피할 곳이 있나’를 살 만한 곳의 주요 기준으로 삼은 것을 보면,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전쟁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책이기도 하지요. 오늘날에도 극단적인 다툼과 불평등, 차별 탓에 사람들이 ‘이민 가고 싶다’는 푸념을 하지요? 당대 조선의 현실을 우려하고 개선을 촉구했던 이중환의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안 교수)


조종엽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