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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은혜’의 세상

Posted July. 02, 2018 07:16,   

Updated July. 02, 2018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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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몸서리쳐지는 양자택일 앞에 서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문명을 살리기 위해 조국의 패망을 위해 기도하느냐, 아니면 독일의 전쟁 승리를 위해 기도함으로 그것을 파괴하느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미국을 떠나며 한 설교’

 그는 유니언신학대 교수 자리가 마련된 미국에 머무는 중이었다. 그러나 아돌프 히틀러의 집권 이후 이미 박해를 받아오던 본회퍼 목사는 이 말을 남기고 죽음이 기다리는 고국으로 돌아간다. 결국 히틀러 암살 작전에 가담한 죄목으로 1943년 체포되고 종전 직전인 1945년 4월, 39세의 나이로 교수대에서 생을 마감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입니다.” 처형장으로 가며 동료 죄수들에게 그가 남긴 말이다. 누구보다 삶을 사랑했던 그는 왜 스스로를 버렸을까? “대지와 하느님을 아울러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를 믿을 수 있다”고 한 그의 말에 답이 있다.

  ‘거룩한’ 성직자들은 나치라는 대세를 좇았다. 그러나 이 땅과 이 땅의 인간을 너무도 사랑했던 이 젊은 신학자는 오히려 죽음을 택했다. ‘하느님 나라는 대지에서 일어나는 부활의 나라’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본회퍼를 처음 만난 것은 20대 말이었다. 피안을 위해 현세를 부정해야 한다는 정통 기독교식 믿음이 한편에서 조여 왔고 변혁운동과 엄중한 현실 사이의 갈등이 다른 편에서 누르던 때였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그의 변증법은 ‘명목의 세계’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줬다.

 그는 믿는 것만으로 구원받았다고 여기는 것이나 죄의 고백 없는 성만찬 등을 ‘싸구려 은혜’라 보고 비판했다. 말끝마다 국민을 위해서라고 되뇌는 정치인들, 본 적 없는 고객님을 사랑한다는 상업자본, 현세를 위해 내세를 파는 종교, 여전히 가짜 사랑과 값싼 은혜가 차고 넘치는 이 세상에서 본회퍼의 삶과 글은 문득문득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높은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