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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 부시의 장례식

Posted April. 23, 2018 07:35,   

Updated April. 23, 2018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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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미국 명문여대 웰즐리대에서 졸업식을 앞두고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퍼스트레이디가 축사를 하는 것을 놓고 일각에서 “남편이 대통령이라고 연단에 설 수 있냐”며 ‘자격’을 문제 삼은 것. 그 주인공이 바로 바버라 부시 여사.

 ▷그러나 부시 여사는 여유 있는 미소로 졸업식 연단에 올랐다. 이어 “오늘 청중 가운데 나의 길을 따라 대통령의 배우자로 백악관에 들어갈 사람이 있을지 누가 알겠느냐”는 한 마디로 상황을 단숨에 반전시켰다. “그가 잘 되길 바랍니다(I wish him well)”. ‘여성 대통령’의 소망을 담은 연설에 환호가 쏟아졌다. 자신을 반대한 학생들에게 내심 불쾌할 법도 하건만 되레 정치명문가를 이끈 여성다운 품격과 기개를 보여준 셈이다.

 ▷제41대 대통령 조지 부시의 부인, 제43대 대통령인 조지 W 부시의 어머니. 그의 타계소식이 전해진 뒤 “역대 최고의 퍼스트레이디”라는 평가와 더불어 추모 열기가 뜨겁다. 21일(현지시간) 텍사스 주 휴스턴 시에서 열린 장례식에서는 유독 가짜 진주목걸이에 파란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백발에 주름진 얼굴, 가짜 목걸이가 트레이드마크였던 ‘국민 할머니’를 추모하는 차림새였다.

 ▷미 전역에 생중계된 장례식에 4명의 전직 대통령과 4명의 퍼스트레이디가 함께 했다. 남편과 아들 부부를 비롯해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부부, 현직 퍼스트레이디가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것. 미 언론은 전직 대통령도 아닌 퍼스트레이디의 장례식으로서는 이례적이라며 “서로 다른 정당의 전직 대통령들이 함께 슬픔을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소개했다. 두 명이나 전직 대통령이 구속 수감된 우리에게는 부러운 장면이다. 백악관 경호실은 대통령과 그 가족에게 코드네임을 붙인다. 부시 여사의 코드네임은 ‘tranquility’(평온). 그는 대통령 남편의 권력을 빌린 요란한 대외활동이 아니라 다정하고 소박한 퍼스트레이디로 미국인의 가슴에 오래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