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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출토 왕비의 도장, 명성황후 사용 가능성 커”

“서촌 출토 왕비의 도장, 명성황후 사용 가능성 커”

Posted April. 18, 2018 07:52,   

Updated April. 18, 2018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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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촌에서 출토된 내교인(內敎印·왕비의 도장)은 명성황후가 사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최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서쪽 발굴 조사 현장(통의동 70번지)에서 출토돼 16일 공개된 내교인 2과(顆)의 사용자가 조선 헌종∼고종 대의 왕비들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출토된 내교인을 검토한 손환일 대전대 서화문화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내교인은 왕비가 바뀐다고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대로 물려 쓴다”며 이같이 밝혔다. 손 연구위원은 왕실 등의 인장 1500여 건을 조사한 이 분야 전문가다.

 손 연구위원에 따르면 이번에 출토된 내교인은 인뉴(印(뉴,유)·도장의 꼭지, 손잡이) 부분 조각과 서체의 디자인이 1900∼1907년경 편찬된 ‘보인부신총수(寶印符信總數)’에 나오는 것과 거의 같다. 보인부신총수는 대한제국 황실의 보인(왕실과 관청의 도장)과 부신(신표·信標)을 설명한 책이다. 책에 나오는 내교인 도안은 이번에 출토된 내교인을 참고해 그린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출토된 내교인의 모양이 대한제국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내교인 2과보다 다소 거칠다는 점도 1897년 대한제국 선포 전에 사용됐다는 걸 시사한다.

 내교인의 글씨체는 소전(小篆)이다. 1823∼1834년(순조 23∼34년) 명례궁(明禮宮)에서 쓴 물품을 기록한 ‘명례궁봉하책’에 찍힌 내교인도 소전이지만 모양이 다르다. 손 연구위원은 “소전은 18세기 후반∼19세기 인장에 유행했다”며 “추후 연구가 필요하지만 적어도 헌종(재위 1834∼1849) 대부터 1880년대까지 왕비가 사용한 인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내교인을 발굴한 수도문물연구원(원장 오경택)은 내교인이 출토된 민가 터에서 과거 궁내부 관리 등이 살았던 사실이 출토와 관련됐는지 살펴보고 있다. 조선 말기 왕실 인장은 궁내부에서 관리했다.


조종엽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