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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가결, 그 후 1년

Posted December. 09, 2017 07:05,   

Updated December. 09, 2017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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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은 직무집행과 관련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국민이 대통령에게 부여해 준 신임을 근본적으로 저버렸다.” 1년 전인 12월 9일 박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작성한 소추위원단은 국회 본회의 제안 설명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이라는 사인(私人)이 국정농단을 하도록 권력을 사유화해 대통령에게 권력을 위임한 국민주권주의와 대의민주주의 헌법정신을 위배했다는 요지였다.

 탄핵소추안은 찬성 234, 반대 56, 기권 2, 무효 7표로 가결 정족수 200표를 훌쩍 넘었다.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었다. 아니, 더 새롭고 놀라운 역사는 그 한달 여 전부터 시작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한 시민들은 광장으로 몰려나와 촛불을 들었고, 결국 헌법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을 파면하는 탄핵절차를 궤도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이 탄핵소추 가결 반년 뒤 문재인 대통령 탄생의 출발점이자 원동력이었다.

 질서 있는 집회로 법치주의에 따라 최고권력자를 파면한 사례는 세계에서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은 일종의 명예혁명이었다. 그 정신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행사는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다는 삼권분립 강화,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도 국회에서 헌법에 따라 처벌하는 대의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존중, 권력이 기업을 마음대로 휘둘러서 안 된다는 시장경제 원칙, 미래에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국민적 염원 등일 것이다. 이것이 촛불과 탄핵절차를 거쳐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소명(召命)이기도 하다.

 새 정부 탄생 7개월이 되는 오늘, 과연 이 정부가 그 같은 시대적 요구에 충실했는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민주적이고 소탈한 문 대통령이 전임처럼 청와대 구중심처(九重深處)에서 아무도 모르게 권력을 농단할 것이라고 보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입밖에 꺼냈다가는 한순간에 유·무형의 겁박과 압력에 시달리게 되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또 다른 얼굴은 아닌가. 이번 청와대도 국회와 야당을 무시하고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에 맞는가. 무엇보다 법적인 근거도 모호한 각 부처의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가 과거 정권의 일을 들쑤셔 반년 동안 나라가 과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법치와 미래라는 관점에 비쳐볼 때 옳은 방향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권력이 기업을 흔드는 것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권위주의 정권처럼 기업의 오너를 겁박해 움직이는 방식은 아니더라도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정규직화, 노동이사제 도입 등 시장경제의 저변을 흔드는, 훨씬 더 효과적인 방식으로 기업을 옥죄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정·사법기관은 물론 공공기관 공기업 인사로 밭을 갈아엎는 작업도 꾸준히 진행 중다. 그 청산과 갈아엎기, 과거와의 싸움에 피로감을 느끼는 국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제 눈을 과거에서 미래로, 안에서 밖으로 돌려야 할 때다. 미국 조야(朝野)에서 주한 미국인 철수와 평창 올림픽에 불안감마저 표출되는 미증유(未曾有)의 위기에 우리끼리 지지고 볶고 있어선 안 된다. 적폐청산 작업도 그만하면 됐다. 이제는 그간의 청산작업에서 드러난 결과를 가지고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문 대통령이 선거 기간 누누이 강조한 ‘대통합’의 정신과도 맞다. 아무리 우리가 주변의 깡패와 키다리 정권에 둘러싸여 불안감에 떨지라도 대통령이 손들고 앞장 서 헤쳐 나가려 한다면 국민은 믿고 따라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