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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서 빚은 막걸리-소주, 뉴요커 입맛을 사로잡다

美서 빚은 막걸리-소주, 뉴요커 입맛을 사로잡다

Posted October. 31, 2017 07:18,   

Updated October. 31, 201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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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캬하∼, 좋다.”

 2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주 북쪽 부어스트버로의 ‘두메산골 김씨농장’. 야외 테이블을 차지한 손님 윤준석 씨(뉴욕 브루클린 거주)가 동료들과 막걸리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윤 씨는 “뉴욕에서 만들어서 그런지 신선하다”고 말했다. 영락없는 한국의 단풍 나들이 풍경이었다.

 농장주인 고희영 씨는 3년의 도전 끝에 2012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막걸리 생산 허가를 따냈다. 고 씨는 “미국 주류 허가 기준에 막걸리가 없어 ‘라이스 와인’이라는 항목으로 간신히 허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농장에서 채취한 더덕을 넣은 ‘뉴욕 생막걸리’를 농장의 양조장에서 5년째 빚고 있다.

○ ‘미국 소주’ ‘미국 막걸리’ 붐

 최근 미국에서 한국 음식과 반찬 문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막걸리와 소주를 직접 빚는 술도가가 늘고 있다. 막걸리만 해도 국순당 등 한국 주류회사가 수출하는 제품 외에 뉴욕 생막걸리, 기린스테이크하우스 막걸리(시애틀) 등이 있다. 소주는 11일 뉴욕에서 열린 평창 겨울올림픽 홍보 행사에 참석한 미국 영화배우 조너선 베넷이 ‘소주 봄(bomb·소주 폭탄주)’을 외칠 정도로 꽤 대중화됐다. ‘미국 소주’ 술도가도 늘고 있다.

 28일 뉴욕 브루클린의 밴 브런트 양조장. 입구부터 달짝지근한 술 익는 냄새가 풍겨 왔다. 컴컴한 양조장에서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 브랜던 힐 씨가 구릿빛 증류기에서 투명한 술을 뽑아내고 있었다. 80도의 소주 원액이었다. 냄새만 맡았을 뿐인데도 술기운이 확 올라왔다. 힐 씨는 하와이대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하고 2011년 토끼해에 한국에서 소주 빚는 법을 배웠다. 한국의 전통소주 제조 기법에 미국의 양조 과학을 응용해 브루클린 양조장에서 지난해 ‘토끼 소주’를 선보였다. 힐 씨는 “설탕이나 화학첨가물을 넣지 않고 한국의 밀밭에서 배양해 가져온 누룩과 브루클린의 효모, 캘리포니아산 유기농 찹쌀로 만든다”며 “한국 전통소주의 참맛을 미국에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수입된 녹색병의 일반 소주가 병당 3달러 안팎이지만 23도, 40도 두 종류의 토끼 소주는 30∼40달러에 팔린다. 힐 씨는 “올해 오미자 소주를 개발했고 내년에는 감잎차를 이용한 소주를 내놓을 계획”이라며 “언젠가 생산과 보관이 까다로운 막걸리 제조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 안주문화 타고 사케에 도전장

 뉴욕에는 토끼 소주 외에 한국계 변호사인 캐럴라인 김 씨가 만든 ‘여보 소주’도 고급 식당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브루클린에서 한식당 ‘인사’를 운영하고 있는 셰프 신용섭 씨는 “천연 재료를 쓴 순수한 소주는 새로운 시장이어서 미국인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라며 “소주와 한국 음식의 품격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주와 막걸리의 현지화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힐 씨가 혼자 만드는 토끼 소주의 생산량은 한 달에 400∼500병 정도에 불과하다. 일본 사케는 고령화로 국내 소비가 급감하고 양조장이 전성기의 3분의 1로 줄자 해외에서 활로를 찾았다. 최근 10년간 사케의 해외 수출은 갑절로 늘었다.

 힐 씨는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미국인에게 여럿이 함께 술을 마시며 음식과 경험을 나누는 한국의 안주문화가 매우 매력적”이라며 “스시 인기를 타고 사케가 성공한 것처럼 한국 술도 안주문화를 타고 미국시장에 뿌리내렸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박용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