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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 앞 건널목에 노란발자국... 교통사고 27% ‘뚝’

초등교 앞 건널목에 노란발자국... 교통사고 27% ‘뚝’

Posted October. 21, 2017 07:46,   

Updated October. 21, 201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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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으로 그의 저서인 ‘넛지(Nudge)’가 각종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관료 사회나 공공부문에서도 다시 널리 읽히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는 넛지를 활용한 정책 개발 사례가 그리 많지 않지만, 일부에서는 이와 비슷한 행동경제학 이론이 실제 정책에 적용돼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15년 10월, 경기 안양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13세 어린이가 우회전 하던 차에 치여 숨졌다. 이 어린이는 녹색 신호를 확인하고 건넜지만 변을 당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경기 수원시 장안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건널목을 건너던 어린이가 차에 치이기도 했다.

 어린이의 횡단보도 사고가 계속되자 관할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지난해 3월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다. 건널목에서 인도 안쪽으로 50cm∼1m 들어간 곳의 바닥에 노란색 발자국을 그려 넣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까지 어린이들은 등하교 시간에 도로에 바짝 붙어 있다가 신호가 바뀌면 횡단보도를 급하게 건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노란색 발자국 그림이 생기자 어린이들이 차도에 붙지 않고 그려진 발자국에 얌전히 발을 대고 기다리는 경우가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차도와 멀리 떨어지게 만든 것이다.

 경기남부청은 지난해 10월까지 관할 903개 모든 초등학교 주변 건널목에 노란 발자국을 그려 넣었다. 그러자 지난해 1∼8월 52건이나 됐던 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사고가 올해 1∼8월에는 38건으로 30% 가까이 감소했다. 사상자 역시 55명에서 37명으로 줄었다. 경기남부청 이선우 교통계장은 “‘넛지’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2014년 1월 서울시청 시민청 입구에 ‘가야금 건강계단’을 조성했다. 비만을 예방하고, 생활 속 걷기를 유도하기 위해 만든 이 계단은 오를 때마다 가야금 연주 소리가 난다. 또 계단을 이용하면 기업의 후원을 받아 한 사람당 10원씩 기부가 이뤄지도록 했다. 건강계단이 생긴 이후로 평소 같으면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만 이용하던 시민들이 점점 계단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이 건강계단을 지하철역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외국은 ‘넛지’의 개념을 보다 적극적으로 정책에 활용하고 있다. 영국 국세청은 2009년 체납자에게 보내는 독촉장에 ‘영국인의 90%가 세금을 냈다’는 문장을 추가했다. 그러자 전년도에 비해 연체된 세금을 납부한 비율이 57%에서 86%로 올라갔다. 2010년 집권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아예 새 정부를 구성하면서 넛지를 정책에 적용하기 위해 ‘행동 통찰팀’을 만들었다. 금연, 에너지 효율, 장기 기증, 소비자 보호, 자선 기부, 준법 전략 등 다양한 영역에서 관련 정책을 추진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는 연금 저축률을 높이기 위해 넛지 개념을 사용했다. 젊은층의 퇴직연금 가입자 수가 많지 않아 고민하던 오바마 행정부는 연금 가입을 ‘의사를 밝힌 뒤 가입’하는 방식에서 ‘자동 가입시킨 뒤 탈퇴 의사를 밝히는’ 방식으로 바꿨다. 그러자 가입률이 크게 치솟았다. 자격 요건이 되는데도 가입하지 않던 사람들을 연금제도의 테두리 안에 쉽게 끌어들인 것이다. 효과를 본 정부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을 위한 저축 장려책으로 ‘점진적 저축 증대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급여 인상분에 맞춰 저축 금액이 자동으로 늘어날 수 있게 유도하는 프로그램으로 저축률 증대에 큰 기여를 했다.



김준일 ji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