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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네스코

Posted October. 14, 2017 07:34,   

Updated October. 16, 201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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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수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항 부근 하시마 섬을 배경으로 강제징용의 숨겨진 역사를 다뤘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 빼곡히 들어선 섬이 마치 군함같이 보여 붙은 이름으로 조선인 징용자들에게 군함도는 곧 생지옥이었다.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하면 대부분 세계유산을 떠올린다. 그런데 세계유산을 둘러싼 문제로 조직이 휘청거리고 있다. 2015년 7월 일본은 해저 석탄을 캐냈던 군함도가 근대 산업혁명 유산이라며 한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문화유산에 등재시켰다. 유네스코는 “강제노역을 인정하라”는 권고를 붙였으나 일본이 이행하지 않아도 침묵했다. 유네스코에 두 번째로 많은 기부를 하는 일본이 걸핏하면 분담금을 무기로 휘두르기 때문이다. 2년 전 중국 난징대학살 자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반발해 분담금을 보류하더니 올해도 지급을 미뤘다. 한국 등 8개국 시민단체가 추진하는 일본군위안부기록물의 등재심사를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보다 두 배 이상 돈을 내는 1위 후원국 미국이 12일 내년 말을 기점으로 유네스코 탈퇴를 공식 통보했다. 1984년에도 유네스코의 소련 편향과 방만한 운영을 이유로 탈퇴했다 2002년 복귀했으니 이번이 두 번째다. 이번 탈퇴 이유는 유네스코가 7월 요르단강 서안 헤브론의 성지를 이스라엘 아닌 팔레스타인 유산으로 등록하는 등 ‘반(反)이스라엘 성향’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측은 “유엔 가족의 손실이자 다자주의에 손실”이라며 우려했다.

 ▷유네스코 헌장의 첫 대목은 이렇게 시작된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평화를 지키는 것도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1945년 인류공영과 세계평화를 목표로 출범한 유네스코가 첨예한 외교전장터가 됐다.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뒤 인류 보편적 가치를 논의하는 다자외교의 무대에서 미국이 초강대국으로서 막중한 위상과 책임을 팽개치는 일이 잦아졌다. 국제사회의 리더로서 오랜 시간 쌓아온 공든 탑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