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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와 개입주의

Posted October. 11, 2017 07:36,   

Updated October. 11, 201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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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정부가 매년 도로변에서 수거하는 쓰레기는 20만 포대, 7500톤에 이른다. 환경보호단체인 클린업브리튼은 어떤 캠페인도 먹히지 않자 2015년 6월 행동경제학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학자들은 쓰레기 투기가 아무도 자신을 모를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저지르는 무의식적 행동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나온 해법이 패스트푸드점들이 포장지 겉면에 구매자의 이름을 쓰도록 권고하는 것이었다. 익명성이라는 커튼을 걷고 책임감을 드러내는 실험이 현재진행형이다.

 ▷비행기 이륙 직전 기장이 “추락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방송한다면 그때부터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 것이다. 행동경제학은 이처럼 인간이 직관에 의존하는 비합리적이고 소극적인 존재라고 본다. 광우병 논란 같은 비이성적 공포가 쉽게 확산되거나 인터넷 홈쇼핑에 가입하면서 광고수신 거절항목에 클릭하는 수고를 귀찮아 하다가 스팸 메일에 시달리곤 하는 이유다.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정부의 은근한 개입을 통해 직관적이고 게으른 사람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고 8년 전 저서 ‘넛지(Nudge·툭 찌르기)’에서 밝혔다. 행동경제학을 현실에 접목한 그의 노력은 9일 노벨경제학상으로 보상받았다. 넛지의 효과로 많이 인용되는 것이 암스테르담 공항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다. 소변기 중앙에 검정색 파리를 그려 넣자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80% 줄었다.

 ▷‘개입주의’를 강조하는 넛지는 큰 정부를 표방하는 진보정권에 부합하는 개념이다. 지난 보수정권도 넛지와 규제개혁을 접목하다가 실패했다. 무엇보다 넛지는 복잡한 현안을 두고 고민만 하는 대중 대신 정부가 답을 골라줄 수 있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러나 넛지도 남용해선 안 된다. 한 예로 장기 기증을 거부하지 않으면 기증에 동의했다고 간주해선 곤란하다. 넛지의 공동 저자인 캐스 선스타인도 넛지 후속편인 ‘심플러’에 강한 경고를 담았다. “정부는 스스로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투표의 기본적인 규칙들을 악용해서는 안 된다.”



홍 수 용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