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지킬 박사들’의 엽기범죄

　할리우드 전쟁영화를 보면 아군과 적군이 치열하게 교전하는 전투장면에 엄청난 공을 들인다. 그러나 실제로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아무리 전장터라고 해도 쉽지 않은 법. 미국의 군사심리학자 데이브 그로스만이 쓴 ‘살인의 심리학’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때 적군을 향해 자신의 총을 발사한 군인은 대략 15∼20%, 5명 중 1명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자기보호의 본능을 포기할 만큼 인간에게 있어서 살해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이 큰 탓이다. 대한민국이 황금연휴를 즐기는 사이, 나라 밖에서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무참히 짓밟은 범죄 소식이 연거푸 전해졌다. 미 라스베가스에서는 은퇴한 60대 회계사 스티븐 패독이 콘서트장에 모인 수많은 관중을 향해 무차별 총기난사를 벌여 59명이 숨졌다. 지구촌을 발칵 뒤집어놓은 미 역사상 최악의 총격범은 부유한 은퇴자에 별다른 범죄기록도 없었다. 그의 범행동기는 오리무중.

　▷유럽에서는 덴마크 백만장자이자 발명가 페터 마드센을 취재하러 갔던 스웨덴 여기자가 실종 열흘 만에 머리없는 시신으로 발견됐다. 마드센이 자신이 만든 잠수함에서 기자를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내 버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의 컴퓨터에는 여성들이 고문 살인당하는 영상들이 담겨 있었다. 유명인사의 엽기살인이란 점에서 충격은 더 컸다. 비정한 살인파티를 자행한 패덤이나 마드센이나 경제적으로 풍족했고 배울 만큼 배운 지식인이란 점에서 더욱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로스만에 의하면 2차대전과 달리 베트남전의 경우 사격비율이 90%를 넘어섰다. 그는 이렇듯 사격 비율을 네 배 이상 높인 방법이 민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현상을 우려했다. 즉, 영화 게임 등을 통해 총기난사를 비롯한 온갖 폭력적 장면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고 반복적으로 끔찍한 장면을 접하다보면 인간의 감성도 무뎌진다는 결론이다. 21세기판 ‘지킬 박사들’의 혐오스런 범죄를 돌아보며 우리 스스로 질문을 던질 때가 온 것 같다. 인간은 괴물로 태어나는가, 아니면 괴물을 길러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