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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한미FTA에 바라는 건 숫자 아닌 명분이다

트럼프가 한미FTA에 바라는 건 숫자 아닌 명분이다

Posted September. 30, 2017 07:38,   

Updated September. 30, 2017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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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기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주장이 단순한 엄포가 아니라 실제 준비 중인 정부 차원의 통상카드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서 백악관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한미 FTA 폐기를 한국에 통보하는 편지까지 작성했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22일에는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이 한 세미나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하는 한국의 정책을 트럼프 대통령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며 이런 분위기가 한미FTA를 폐기하고 싶어 하는 대통령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대북정책에서 한미 간 엇박자가 불거지는 마당에 8월 1차 한미 FTA 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트럼프 대통령이 FTA 폐기를 밀어붙이는 셈이다.

 북핵 해결에 강력한 한미동맹이 필수적이라는 미국 내 여론에 따라 FTA 이슈가 수그러들었지만 한미FTA 폐기는 임박한 현실이다. 최근 우리 정부가 다음달 4일 한미 FTA 2차 공동위원회를 미국 워싱턴에서 열자고 먼저 제안한 것은 긴박하게 돌아가는 미국의 내부사정을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폐기 논의가 되기 전에 서둘러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김 본부장의 말은 한국이 더는 단호한 협상 태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들린다.

 이제 ‘FTA 효과 공동조사부터 하자’는 우리의 기존 주장은 힘을 잃는 반면 미국의 ‘즉각적인 개정협상’ 요구에 무게가 실릴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자동차 분야의 무역적자 해소와 서비스 분야의 개방 등을 요구하며 압박할 것이다. 제조업 경쟁력은 제자리걸음이고 서비스산업은 후진적인 한국으로선 추가 개방을 하기 어렵고 현상 유지도 힘든 딜레마에 빠질 우려가 있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FTA 재협상 주장은 정치적 기반인 낙후된 북부·중서부 제조업지대, 러스트벨트의 백인 중산층 노동자를 의식한 것이었다. 그런 트럼프에게 양국 교역량의 증가나 미국의 서비스 수지 확대 같은 통계는 큰 의미가 없다. 그가 원하는 것은 논리적인 숫자가 아니라 지지층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이다. 김현종 통상팀은 이것을 염두에 두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