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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찌른 김정은의 ICBM 도발

Posted July. 31, 2017 07:40,   

Updated July. 31, 2017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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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2차 도발의 위협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각본과 연출은 물론이고 주연까지 도맡아 한미 양국과 국제사회의 허를 완벽하게 찔렀다.

○ 김정은의 ‘페인트 모션’

 우선 ICBM 도발이 유력시됐던 27일 김정은의 눈속임 행보가 주효했다. 북한이 일주일 전부터 평북 구성 일대에서 ICBM 도발 징후를 보이자 한미 군당국은 초긴장 상태로 관련 동향을 주시했다. 김정은이 정전협정 64주년인 27일(북한은 전승절)을 ‘도발 디데이’로 삼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26일경 김정은과 북한군 고위 지휘관들이 탄 것으로 보이는 차량 행렬이 평북 구성 일대에서 포착되자 도발이 임박했다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하지만 김정은은 27일 평양시내 인민군 묘지를 참배하면서 보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ICBM도 쏘지 않았다.

 군 당국은 김정은이 다른 날을 고를 것으로 보고 도발 임박 징후가 없다고 발표했지만 김정은은 이미 27일 ‘화성-14형의 28일 밤 시험발사’를 친필로 승인한 상태였다. 묘지 참배는 기습 효과를 노린 김정은의 기만전술이었던 셈이다. 군 관계자는 “ICBM급 2차 도발은 김정은이 주도면밀하게 기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난다”고 말했다.

○ 워싱턴 시간대 겨냥한 심야 도발

 밤 12시가 다 된 심야시간에 ICBM을 쏜 건은 다목적 포석이다. 군 관계자는 “미 정찰위성의 감시를 최대한 피하고, 우리 군의 대북 미사일 감시태세를 떠보려는 저의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새벽과 오전에 이어 심야시간대의 핵·미사일 도발 시 한미 정부와 양국군의 대응 속도와 절차를 면밀히 비교 분석해 도발 효과의 득실을 따져볼 것이라는 얘기다.

 이번 ICBM급 2차 도발이 4일(1차 도발)에 이어 미 본토에 대한 핵타격 경고라는 김정은의 메시지도 읽힌다. 북한이 화성-14형을 쏜 시각(28일 오후 11시 41분경)은 워싱턴(28일 오전 10시 41분경)의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간대였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인들의 충격을 극대화하는 차원에서 금요일 오전을 택한 것”이라고 했다.

○ 성동격서(聲東擊西)식 발사장소 속이기

 당초 북한은 평북 구성 일대에서 탄도미사일을 실은 이동식발사차량(TEL)과 관측레이더 가동 징후를 미 정찰위성 등에 노출시켰다. 또 함경남도 신포 조선소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징후를 보이는 한편 로미오급 잠수함을 보름 가까이 동해상에 출항시켰다. 이 때문에 김정은이 구성 지역에서 ICBM급 미사일을 쏘거나 SLBM 도발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나왔다.

 실제 도발은 구성에서 동쪽으로 약 130km 떨어진 자강도 무평리에서 이뤄졌다. 북-중 국경에서 불과 50km 떨어진 이 지역에는 북한의 핵·미사일 기지들이 밀집돼 있다. 유사시 한미 연합군이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 우려 때문에 과감한 타격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군 당국자는 “매년 한미 연합 연습 때마다 이 문제가 한미 군 당국의 최대 고민”이라고 말했다. 북한에는 전략적 이점으로 작용한다. 북한은 이 지역 깊숙한 곳에 기지를 건설해 화성-14형을 비롯한 ICBM급 미사일을 배치할 것으로 예상된다. 군 고위 소식통은 “자강도 지역은 미 본토를 향해 ICBM을 쏘기에 지리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최적의 장소”라며 “이번 화성-14형 2차 도발도 대미 실전 사용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말했다.

○ 김정은, 벼랑 끝 전술 그 이후는? 

 북한은 과거 ‘벼랑 끝 전술’을 펼친 직후 대화를 제의하는 등 유화 제스처를 취하는 식으로 ‘강온전략’을 병행한 적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북한이 단기간에 대화를 제의할 가능성을 낮게 봤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김정일 정권 때는 그래도 중요한 군사 사안 등에 대해 일부 협의하고 조언할 만한 참모가 있었다”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경우 그런 협의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된 걸로 들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이런 체계가 바뀌지 않는 한 김정은은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해 오판할 수밖에 없다”며 “당분간 ‘강공 일변도’ 도발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손효주·신진우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