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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개의 인생’ 김지미

Posted July. 01, 2017 07:21,   

Updated July. 01, 2017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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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팜파탈’-5년 전 ‘신동아’가 한국 여성의 패러다임을 바꾼 여배우 중 첫 순서로 이 사람을 조명하면서 붙인 제목이다. 2010년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신상옥 유현목 황정순에 이어 4번째로 오를 때는 ‘화려한 여배우’란 타이틀로 입성했다. 1957년 ‘황혼열차’로 데뷔해 ‘길소뜸’ ‘티켓’ 등 수백 편에 출연했고 제작자와 영화인협회 이사장으로도 활약했다. 한국 영화사에서 둘도 없는, 요즘 말로 ‘미친 존재감’을 보여준 여배우는 누구일까? 그는 바로 김지미(77)다.

 ▷김지미의 매력은 여러 겹이다. 치명적 아름다움의 여배우, 카리스마 넘치는 여장부, 세상을 뒤흔든 스캔들 메이커 등. 그가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는 데는 빼어난 미모와 함께 굴곡진 삶도 한몫했다. 영화감독 홍성기, 배우 최무룡, 가수 나훈아, 의사 이종구 순으로 4번 결혼하고 4번 헤어졌다. 최무룡과는 간통 혐의로 구속돼 철창 신세를 졌다. 사실혼 관계였던 나훈아와는 7세 연하남과의 사랑으로 화제가 됐다.

 ▷생전에 배우 박노식은 김지미를 “웬만한 남자와는 비교가 안 되는 여장부”라고 평가했다. 영화 외적 활동에서도 강단 있는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제3공화국의 엄혹한 시절, 그는 야당의 김대중(DJ)을 공개 지지했다. 그러나 DJ 정권이 들어선 뒤 ‘혁명군’처럼 행세한 좌파 영화인들과 마찰을 겪으며 한동안 영화계를 등졌다. 오랜만에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제 서울 영상자료원에서 열린 데뷔 60주년 특별전 ‘매혹의 배우, 김지미’ 개막식에 참석한 것이다.

 ▷얼굴에 팬 주름과 희끗희끗한 백발에도 김지미는 여전히 도도하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는 “60년간 어림잡아 700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700가지 인생을 살았다”며 “제 스스로 ‘참 기특하구나’ 하는 생각을 간혹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요즘은 나처럼 나이 많이 든 배우들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고 아쉬워했다. ‘700가지 인생’의 희로애락이 오롯이 녹아든 여배우의 얼굴, 그 뜨거운 연기 열정을 살리지 못하는 한국 영화계의 빈곤한 상상력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