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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균, 메이저리그 데뷔 무대서 결승 홈런

황재균, 메이저리그 데뷔 무대서 결승 홈런

Posted June. 30, 2017 07:29,   

Updated June. 30, 2017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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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프랑스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1905∼1980)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태어나서(Birth) 죽을 때(Death)까지 어떤 선택(Choice)을 내리는지에 따라 인생이 바뀐다는 뜻이다.

 29일 메이저리그 데뷔 경기에서 결승 홈런을 친 황재균(30·샌프란시스코)의 인생에도 몇 번이나 ‘C’가 찾아왔다. 황재균은 이날 1번을 새긴 유니폼을 입고 안방 AT&T파크에서 콜로라도(Colorado)를 상대로 선발 5번 타자 겸 3루수로 빅리그 신고식을 치렀다.

 4회말 두 번째 타석에서 투수 앞 땅볼로 메이저리그 데뷔 첫 타점을 올린 황재균은 6회말 타석에 들어서 카일 프리랜드(24)가 던진 빠른 공(시속 145km)을 받아쳐 왼쪽 담장을 넘겼다. 황재균의 빅리그 첫 안타이기도 한 이 홈런은 3-3 동점에서 샌프란시스코가 4-3으로 앞서 가는 클러치(Clutch) 홈런이었다.

 황재균은 이 홈런으로 1939년 톰 헤이피(1913∼1996)에 이어 데뷔전에서 홈런을 친 구단 역사상 두 번째 3루수로도 이름을 올렸다. 샌프란시스코가 결국 5-3 승리를 거두면서 이 홈런은 결승 홈런이 됐다.

○ Chance(우연)

 팀을 떠나려고 했던 황재균의 운명을 바꾼 건 백업 내야수 코너(Conor) 길래스피(30)였다. 부상자명단(DL)에 있던 그가 복귀하면서 입지가 좁아졌다고 판단한 황재균은 옵트아웃(Opt-out)을 통해 자유계약선수(FA) 선언을 하려고 했다. 그때 길래스피가 다시 DL에 오르면서 황재균은 빅리그에서 호출을 받았다.

 황재균이 2007년 프로야구 현대에서 처음 주전 자리를 꿰찬 것도 우연 때문이었다. 당시 현대 붙박이 유격수는 지석훈(33·현 NC)이었다. 그때 현대 지휘봉을 잡고 있던 김시진 감독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석훈이 주전 유격수”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타율이 0.176밖에 되지 않던 지석훈은 김 감독을 찾아가 “타격 연습을 좀 더 할 수 있게 제발 2군(현 퓨처스리그)으로 보내 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이때 대신 1군 무대에 올라온 선수가 황재균이었다. 황재균은 타율 0.300으로 시즌을 마치면서 눈도장을 받았다. 그 후 팀이 넥센으로 바뀌고, 포지션을 3루수로 바꾼 다음에도, 또 롯데로 트레이드된 뒤에도 황재균은 주전을 놓치지 않았다. ‘Chance’는 ‘기회’라는 뜻이기도 하다.

○ Challenge(도전)

 황재균이 국내 무대에서 또래 중 가장 독보적인 3루수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최정(30·SK)이 있기 때문이다. 두 선수는 서로 다른 진로를 선택했다. 2014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최정은 총액 86억 원에 SK에 잔류했지만, 황재균은 마이너리그에만 머물 수도 있는 계약 조건을 받아들였다. 메이저리그에 갔을 때 최고 보장액도 310만 달러(약 32억 원)밖에 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을 쳐보고 싶다”는 게 그가 도전을 선택한 이유였다. 황재균은 이날 홈런으로 꿈 하나를 이뤘다.

 황재균의 도전정신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인지 모른다. 황재균의 어머니 설민경 씨(57)는 안성여고 시절까지 정구 선수로 뛰었지만 농협(현 NH농협은행) 입단 후 테니스로 종목을 바꿨다. 그 후 종목 변경 4년 만인 19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에서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황재균은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어머니의 뒤를 이어 야구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이제 어머니의 뒤를 따르고 있는 아들이 빅 리그에서도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황규인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