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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조절장애

Posted June. 20, 2017 07:15,   

Updated June. 20, 2017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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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에서 교사가 고교생이던 주인공 동수와 준석을 패면서 던진 질문이다. 동수 부친은 장의사이고 준석 아버지는 전직 조폭 보스다. 두 사람 다 솔직하게 대답하기 힘든 직업들이다. 동수는 매질을 순순히 받아들이지만 준석은 넘어진 채로 발길질까지 당하자 벌떡 일어나 교사와 한판 붙으려고 한다. 학생들을 마구 주먹질하는 교사와 그래도 마지막엔 꾹 참는 준석 중 누가 감정조절능력이 큰 걸까.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은 생물학적 요인 탓일 수도, 감당하기 힘든 사회생활의 스트레스나 불만 탓일 수도 있다. 두 요소를 선명하게 갈라내 원인을 진단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분노범죄’가 상당히 많다는 점은 확실하다. 경찰청의 ‘2015 통계연보’를 보면 상해나 폭행 등 폭력범죄 37만2723건 중 동기가 우발적이거나 현실 불만에 있는 비율이 41.3%나 됐다. 살인이나 살인미수 같은 중범죄 975건 중 같은 이유로 저질러진 비율도 41.3%였다.

 ▷인터넷 수리기사 피살이나 외벽 도색작업자의 추락사, 지도교수를 상대로 한 사제폭탄 테러 등 최근 연이어 발생한 사건들은 모두 분노조절장애 범죄로 분류할 수 있다. 피해자들은 대체로 사회적 취약계층에 속한다. 지나친 경쟁이 일상화되고 친절을 강조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늘어나면서 감정노동에 시달리다 폭발하는 사례들도 종종 일어난다. 길거리에서 돈을 내고 마음껏 때리라고 매품팔이를 하는 직업처럼 제도적인 ‘분노의 배출구’라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적지 않은 대기업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회사 안팎에 상담센터를 마련해놓고 직장인들의 울화를 미리미리 달래고 있다. 가족이나 직장에서 싹튼 작은 분노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기 전에 다독이는 제도인 셈이다. 국민 각자가 알아서 감정을 조절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분노를 촉발하게 만드는 불합리한 사회구조는 정치가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와 여야는 서로 옳다고만 할 뿐 이 급한 사안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해 분노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