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고흐가 귀를 자른 날 밤, 무슨 일이 있었나

고흐가 귀를 자른 날 밤, 무슨 일이 있었나

Posted June. 03, 2017 07:07,   

Updated June. 03, 2017 07:14

ENGLISH
 마치 탐정소설이나 치밀한 탐사보도 기사를 읽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미술사 책이다. 미술사 이론을 일절 언급하지 않고도 빈센트 반 고흐의 예술세계를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무려 7년에 걸쳐 고흐의 자해에 숨겨진 팩트들을 집요하게 추적한 저자의 열정에 존경심마저 일어난다.

 1888년 12월 23일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건 그로테스크한 사건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당시 한 지방신문에 짧게 소개된 이 사건은 나중에 고흐의 예술세계를 규정 짓는 위력을 발휘한다. 정신분열과 충동에 지배된, 광기 어린 예술가의 이미지 말이다.

 프랑스로 이주한 영국인 저자가 편견을 깨고 고흐의 진짜 모습을 쫓게 된 건 아주 단순한 의문에서 비롯됐다. ‘그의 자화상에서 붕대로 감긴 귀는 어느 정도나 잘린 것인가?’ ‘잘린 귀를 매춘부에게 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수많은 미술사학자가 고흐를 연구했지만 아무도 정답을 주지 못한 내용들이다.

 어찌 보면 단순한 의문이지만 문제를 풀기 위한 저자의 접근방식은 놀랍도록 철저했다. 고흐의 행동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1880년대 당시 그의 이웃 주민 1만5000명의 신상정보를 모았다. 또 매춘부로 알려진 여성을 비롯한 주민들의 후손을 만나 인터뷰하고 방대한 분량의 19세기 말 공문서를 샅샅이 뒤졌다. 고흐가 동생 등 지인과 나눈 800여 통의 편지도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고흐의 귀가 몇몇 미술전문가의 주장처럼 일부만 살짝 잘린 게 아니라, 아래 귓불 약간을 제외한 전체가 잘린 사실을 알아낸다. 이와 함께 매춘부로 알려진 여성이 사실은 공창가(公娼街)에서 청소 같은 허드렛일을 해주던 젊은 여성이었음을 밝혀낸다. 어려운 삶을 근근이 이어가던 여성과 고통을 나누고 싶었던 고흐의 의도가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고흐와 그의 광기에 대한 단순화된 이미지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고흐의 창작능력은 힘든 정신상태 덕분이 아니라 그것에도 불구하고 그 정점에 이르렀다”고 썼다.



김상운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