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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이션 대신 투표?

Posted May. 08, 2017 07:19,   

Updated May. 08, 2017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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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서 깊은 영국 옥스퍼드대에 다니려면 복장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입학부터 졸업까지 주요 행사 때 착용하는 가운, 모자, 타이, 양말, 신발의 종류에 관해 칼리지별로 세세한 규정이 있다. 그중 하나가 시험을 치를 때 옷깃에 다는 카네이션. 첫 시험 때는 화이트, 중간엔 핑크, 마지막 시험 땐 레드 카네이션을 단다. 꽃을 달면 시험조차 낭만적일까. ‘옥스퍼드 카네이션 시험’은 이곳에 진학을 꿈꾸는 학생들에겐 따라 해보고 싶은 선망의 의식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의 대관식에도 사용됐던 카네이션의 어원은 ‘신성한 꽃’이지만 그 의미는 색상과 나라에 따라 다르다. 붉은색 카네이션은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의 상징이어서 이탈리아 등에선 노동절 행진 때 쓰인다. 흰색은 순수한 사랑의 상징이고, 자주색 카네이션은 프랑스에선 장례식용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로 패션 감각이 비범했던 오스카 와일드는 녹색 카네이션을 즐겨 달았다. 그가 동성애 사건에 휘말렸던 탓에 녹색 카네이션은 동성애자들의 상징이 됐다.

 ▷한국에선 8일이 어버이날이지만 미국 등 상당수 국가는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기념한다. 1908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 그래프턴의 한 교회에서 애나 자비스라는 여성이 몇 해 전 작고한 어머니를 기리는 모임을 가진 것이 유래다. 그때 애나는 생전에 어머니가 좋아했던 흰 카네이션을 참석자들에게 나눠줬다. 어머니 사랑의 순수함을 상징하기 위해서였다. 요즘엔 형형색색의 카네이션이 넘치니 선택도 고민이다.

 ▷“어버이날 선물은 필요 없으니 ○○○ 후보를 찍어다오.” 부모들이 투표권이 있는 자식들에게 9일 대선에서 특정 후보 지지를 부탁한다는 얘기가 농담이 아닌 모양이다. 세대별로 지지 후보가 다른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투표장에서 부모 말을 따를 자식이 과연 얼마나 될까. ‘카네이션 대신 투표를!’이라며 정치적 선택을 효도의 수단인 양 둔갑시킨 후보들이 딱하다. 팍팍한 시기에 부모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뭉클하다. 대선이 언제부터 집안일이 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