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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불러온 비극

Posted April. 15, 2017 07:23,   

Updated April. 15, 2017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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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알면 행복해지고 모르면 불행해질까? 여기서 ‘역사’가 만약 ‘진실’을 의미하는 거라면 이 책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일 것이다.”

 옮긴이의 말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얘기는 상투적이지만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바다. 꼭 ‘승자’가 아니어도 사실(史實)에 대한 기록은 펜을 든 이의 치밀함과 성실성, 가치관의 엄정함에 그 신뢰도를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벨기에 출신 역사학자인 저자는 17년 전 처음 출간된 이 책의 2015년 개정판 서문에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내 연구는 완벽하게 객관적이진 않다. 객관성을 내세우는 것 중 상당수는 익숙한 통설, 객관적인 것처럼 통용되는 지배적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고 썼다.

 저자가 연구한 주 대상은 미국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수행한 역할을 다룬 역사연구가 대개 ‘훈훈한 역사적 문학’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전쟁에서 미국의 역할을 좌우한 것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되풀이해 보여주는 자유 수호의 이상이 아니라, 대기업과 금융회사의 이익 추구 욕망이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운영 주도권을 쥔 파워 엘리트는 다른 무엇보다 경제적 이익과 사업 이해관계를 중시한다. 이 나라의 신경중추는 포드, 제너럴모터스, IBM 같은 거대 기업이다. IBM은 히틀러의 제3제국에서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IBM의 독일 자회사 데호마그는 유대인의 재산을 압류하고 몰살시키기까지의 모든 일처리를 맡은 ‘펀치 카드 기술’을 제공했다.”

 포드사 창립자인 헨리 포드는 1938년 7월 30일 그의 75세 생일에 나치 독일이 외국인에게 주던 최고 훈장을 받았다. 미국 클리블랜드 주재 독일 영사로부터 히틀러가 보낸 훈장을 받은 사진 속 포드의 표정에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독일 쾰른에 있던 포드의 독일지사 포드-베르케는 1930년대 히틀러가 노동조합을 없애준 덕에 큰 이익을 얻었다.

 지은이는 히틀러가 일으킨 군수산업의 주축 역할을 하던 미국 기업들이 독일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으며, 1941년 12월 11일 히틀러의 느닷없는 선전포고로 인해 미국이 의외의 전쟁에 끌려들어 갔다고 봤다. 러시아 모스크바 전선에서 위기를 맞은 히틀러가 미국 진주만을 폭격한 일본을 소련에 대한 대항마로 삼으려고 미국에 전쟁을 선포했다는 설명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과 전쟁을 원했던 미국이 의도적으로 진주만 기습을 유도했으며, 소련의 동아시아 진출에 앞서 전쟁을 급히 끝내기 위해 원폭 투하를 서둘렀다는 해석은 분명 ‘객관적’이지 않다. 하지만 방위산업이라는 단어로 순화된 군수산업이 작금의 미국 경제를 일으킨 근간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미국의 ‘좋은 전쟁’ 이야기는 냉전을 거쳐 꾸준히 변형되며 재생산되고 있다.

 옮긴이가 말한 ‘행복’이 ‘현실 외면’을 뜻하는 게 아니라면, 익숙한 역사를 새롭게 바라볼 창으로 이 책은 적잖이 유용하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