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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20만명 한국식 버스카드 찍고 불고기-잡채로 잔칫상 차리고 온돌

매일 20만명 한국식 버스카드 찍고 불고기-잡채로 잔칫상 차리고 온돌

Posted June. 29, 201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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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열풍은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등 우리의 주요 무역문화 교역국에서만 불고 있는 게 아니다. 지구촌 방방곡곡 골목골목 스며든 한류 실핏줄의 위력은 중앙아시아의 시골마을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중앙아시아 경제문화의 허브라 불리는 카자흐스탄은 요즘 중앙아시아 한류 허브로 통한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8883달러(2010년)에 달하는 카자흐스탄은 130여 민족에 이르는 민족적 다양성이 특징인데 지리적 위치도 유리해 이곳에서 뜨는 문화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인접국으로 금세 흘러간다. 그런 카자흐스탄에서 요즘 문화계의 화두는 단연 카레야(코리아)다.

불모지에 뿌리 내린 대중한류

카자흐스탄은 1937년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연해주에서 끌려온 한민족의 후손 고려인들이 있는 나라다. 한국 문화가 쉽게 뿌리 내릴 수 있는 곳으로 생각되지만 고려인은 카자흐스탄 전체 인구 1601만 명(2009년 인구센서스) 중 0.1%인 10만 명에 불과하다.

한국과의 수교가 소련 해체 이후인 1992년에야 이뤄진 카자흐스탄은 본래 한류 불모지로 통했다. 이슬람교와 러시아정교를 믿고 러시아어 및 카자흐어를 주로 쓰는 나라에 갑자기 몇 년 전부터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소개되면서 한류 바람이 불더니 지금은 가히 태풍 수준이라 할 만하다. 10대부터 60대까지 한드(한국드라마)에 열광한다. 카자흐스탄 방송국 채널7의 비비굴 사장(38여)은 한드 중 노인과 연장자를 공경하고 가족을 중시하는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공산당 지배 기간 중 사라진 효도, 장유유서, 군사부일체 문화에 대한 추억을 한드에서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한국문화원(아스타나) 한성래 원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카자흐스탄 방송국들이 한국 드라마를 무료로 공급받았는데 이제는 수만 달러씩을 주고 사 가고 있다고 전했다. 알마티에서 13년 동안 최대의 한인신문 한인일보를 운영해온 김상욱 사장도 중앙아시아인들은 한국이 경제발전을 이룩한 후의 모습만을 안다며 따라서 이곳 사람에게 한국 문화는 최첨단 럭셔리 고급문화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생활 속으로 뿌리내린 음식 한류

카자흐스탄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외식업계는 한식당 천국이다. 한식당 수가 중식당과 일식당보다 훨씬 많다. 된장찌개 한 그릇이 1000텡게(약 8000원) 이상으로 비싼데도 현지인들이 별미로 즐겨 먹는다.

알마티 최고급 숙소 중 하나인 하이엇호텔은 2년마다 한 번씩 한국 음식 페스티벌을 열어왔고, 최고급 백화점 람스토르에도 별도로 카레이스키 살라드 매대가 있다. 가정주부 켄지굴 씨(36)는 내 주변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줄줄이 말할 수 있다며 김밥 불고기 잡채 김치찌개 두부찌개 등 한국 음식 중에는 맛있는 게 참 많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세계언어대 박랠리 교수는 한국 음식이 없으면 제대로 차린 잔칫상으로 보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 닮은 대중교통 시스템

이 나라 생활 한류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대중교통. 25일 알마티 이엠소바의 평범한 큰길가 3층 집에는 중앙아시아 전역을 커버할 수 있는 고성능의 컴퓨터서버가 여러 대 설치돼 있다. 현재 알마티 시내버스 1500여 대 모두에 설치된 한국 교통카드 시스템도 이 서버로 운용된다.

알마티에서는 한국에서처럼 교통카드로 매일 20만여 명이 버스를 이용한다. 배차간격, 차량의 위치, 정류장별 승하차 인원 등 갖은 정보가 이 서버로 모인다. 2008년부터 이 시스템을 운용 중인 한국의 중소기업 베스트카드 이종우 법인장은 현재 인근 4개국 5개 도시와도 이 시스템을 설치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면서 한번 시스템이 깔리면 기술 수출은 물론이고 버스 내 음성광고 등 부가적인 수익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 현재 알마티 시정부 측과 교통관제 및 가로등 관제에 대해서도 협의 중이라고 소개했다.

연말 개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인 카자흐스탄 최초의 지하철인 알마티 메트로에도 한국산이 깔린다. 지하철은 물론이고 7개 지하철역 전체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도 한국 제품이다. 에이시모프 알마티 시장은 3월 말 시험운행 때 한국 기술로 만든 차량이 모스크바 지하철보다 더 조용하고 안전하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국토 면적(한국의 27배)에 비해이지만 인구가 적은 나라 특성에 따라 정보기술(IT)에 관심이 많다. 2009년 12월 알마티에 개관한 6층 규모의 ICT 센터가 이런 관심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한국 국제협력단이 기술과 장비를 대고 카자흐스탄 과학기술대가 땅을 내 세운 이 센터는 카자흐스탄 최고이자 최대 규모의 IT 분야 연구 및 교육기관이다. 카자흐스탄 금융결제원은 한국의 금융결제시스템 도입을 위해 한국 측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IT 산업 육성과 함께 심혈을 기울이는 게 농업. 북부 지방 밀을 제외하고는 야채류 과일류 견과류 등을 인근 국가에서 상당량 수입하고 있는 이 나라는 최근 식량자급에 관심을 쏟으면서 한국에 주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목받은 곳이 알마티에서 북쪽으로 300여 km 떨어진 우슈토베 시 산하 한 고려인 초기 정착촌. 지난해 하반기 한국 정부는 비닐 파이프 퇴비 성토 농약 종자 등 한국 자재를 들여와 한국 기술로 비닐하우스를 세웠다. 이 비닐하우스에서 겨울철 섭씨 영하 204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에도 특별한 난방 없이 토마토를 키워내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4월 최첨단 한국 온실에서 사시사철 채소를 재배하는 경험을 보급해야 한다고 강조했을 정도다. 이곳에서 수확한 한국 품종의 토마토는 맛이 좋다는 게 알려지면서 출하 즉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부동산 한류도 거세다. 카자흐스탄은 골조만을 만든 뒤 분양해 주인이 일일이 인테리어를 하는 주택문화였다. 그런데 한국 건설회사들이 인테리어를 모두 해주고 치안 문제, 중앙 정수시스템, 각종 편의시설 등을 단지 내에서 통째로 해결하면서 주택문화 혁명을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김진실 우림건설 카자흐스탄 법인장은 온돌을 놓고 단지 내에 각종 편의시설을 완비하고 보안을 강화하는 등의 한국 주택문화가 크게 환영받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