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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베를린 장벽붕괴 20주년에 바라보는 한반도

[사설] 베를린 장벽붕괴 20주년에 바라보는 한반도

Posted November. 09, 2009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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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오늘 동서독을 가로막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동서독 국민은 서로 얼싸안고 하나가 됐다. 동서독은 이듬 해 10월3일 꿈에 그리던 통일국가 독일로 우뚝 섰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유럽 전체에 지각변동을 일으켜 도미노처럼 이어진 동유럽 각국의 민주화를 거쳐 1991년 구소련의 해체로 정점에 도달했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1914년 1차대전 발발로 시작된 극단의 시대가 끝났다고 규정했다.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냉전의 산물인 분단의 고통을 여태껏 짊어지고 있는 우리에게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맞으며 남다른 상념에 젖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왜 통일을 달성하지 못했는가. 그리고 과연 남북한 통일은 언제 가능한가.

베를린 장벽 붕괴 20년, 통일 19년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독일은 깊고도 컸던 분단의 상처를 지속적으로 치유하고 있다. 독일 할레경제연구소(IWH)는 구동독 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991년 구 서독지역의 33%에 불과했으나 현재 70%로 성장했으며 10년 뒤에는 80%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동독 주민들은 분단 시절 박탈당했던 자유와 인권을 누리며 선진국 독일의 국민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 통독 이후 구 동독지역 재건을 위해 1조3000억 유로(약 2260조원)가 투입됐지만 결국 독일의 발전을 위한 투자였으며 분단이 지속됐을 경우 치러야 할 기회비용에 비하면 훨씬 가치 있는 지원이었다. 통독은 갑작스런 선물이자 미래에 대비한 착실한 준비가 이뤄낸 결실이었다. 동서독 지도자 누구도 동독 주민의 서독 자유통행 허용이 베를린 장벽 붕괴와 통독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헬무트 콜 당시 총리는 통일에 반대하는 구소련과 영국 프랑스를 설득해 대업을 달성했다.

동서독이 인적교류와 협력을 통해 같은 민족이라는 인식을 이어온 것도 통일의 발판이 됐다. 통일 전까지 500만명의 동독인이 서독으로 이주했으며 50만명의 서독인이 동독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서신과 전화가 허용됐고 동독 주민들은 서독 TV를 시청하면서 서독 동포와 공감대를 넓혔다. 서독과의 교류는 동독주민의 의식수준을 높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동독 주민들은 사상의 자유, 정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자유 여행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통독과정에 남북통일을 위한 교훈이 담겨있지만 우리는 잠시 관심을 기울였을 뿐이다. 노태우 김영삼 정부 때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만들어 발표했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 들어 대북정책을 우선시하며 통일논의는 실종됐다.

한반도의 통일 환경은 갈수록 혼란해지는 추세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3대 세습을 획책하며 핵무장 카드로 세계와 대결하고 있다. 2400만 북한 주민은 독재 권력의 세뇌대상으로 전락한 것도 모자라 해마다 굶주림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야 하는 가련한 신세가 됐다. 1990년대 초 남한이 북한에 비해 68배이던 소득격차는 현재 38배로 확대돼 통일이 될 경우 재정부담을 걱정하게 한다.

한반도 통일도 예기치 못한 어느날 갑자기 다가올 수 있다. 구 동독의 마지막 총리였던 로타르 드 메지에르 전 총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갑작스러운 붕괴를 맞게 될 경우 한국은 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역설적으로 한국이 탈북자 급증을 막기 위해 새로운 장벽을 세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착실한 준비와 대비가 후유증과 비용을 최소화하는 지름길이다. 지금 남북한 국민총소득(GNI) 격차는 38배이며, 수출액은 384배로 동서독의 경제적 격차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북한이 경제를 발전시켜 주민들의 민생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궁극적으로 평화적 통일로 가는 길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