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친구' 그래도 친구인 그들의 이야기

Posted March. 22, 2001 17:27,   

ENGLISH

1974년 부산에서 함께 뛰어 놀던 아이들에겐 원래 편견이란 게 없었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집이 잘 살든 아니든, 그들은 모두 '친구'라는 한 테두리 안에 묶였던 끈끈한 동지였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이들 사이엔 낮은 담벼락이 생겼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엔 넘긴 힘든 콘크리트 벽이 생겼다. 성적 차이로, 집안 환경 차이로 갈라진 친구들은 끝까지 영원한 친구로 남을 수 있을까. 어쩌면 고등학생 시절 담벼락을 붙잡고 "니는 니처럼 살아라, 내는 내처럼 사께"라고 말하던 순간부터 그들은 이미 남남이 된 건지도 모른다.

주먹 잘 쓰고 깡다구가 센 준석(유오성), 준석보단 못하지만 나름대로 싸움께나 하는 동수(장동건), 공부밖에 몰랐던 모범생 상택(서태화), 떠벌이 감초 중호(정운택). 이 네 명의 친구들은 개울가에서 멱을 감던 순간, 소독차 뒤를 쫓으며 손을 흔들던 순간, 아마추어 록밴드 보컬 진숙(김보경)을 짝사랑했던 순간, 롤러스케이트장에서 부기우기를 추던 순간, 동네 극장에서 패싸움을 벌이던 순간을 함께 했다. 하지만 90년대의 그들은 친구라고 하기엔 너무 섣부를 만큼 이상한 관계로 변해버린다. 의 그들은 "친구의 한자어가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벗"이라는 점을 들어 자신들이 끝까지 친구였음을 강조하고 있지만 말이다.

감독의 분신이기도 한 의 화자 상택은 "그래도 우리 중에 제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고 믿었던 준석과 동수마저 어느 순간부터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회고한다. 건달에게도 나름의 파가 있었기에 준석과 동수는 오랜 우정을 유지하지 못한 채 "가능성 없다"고 믿었던 친구끼리의 칼부림을 시작한다.

이들의 갈등은 영화 중반 이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는데, 이때부터가 진짜 깡패영화의 진수다. "내는 니한테 뭔데? 난 니 시다바리인가?"라며 준석을 채근하던 동수는 친구에 대한 콤플렉스를 다독이지 못하고 결국 준석의 적이 되길 자처한다. 는 이런 두 사람의 갈등을 드라마틱한 화법으로 묘사하며 영화의 긴장감을 최고조까지 끌어올린다. 불알친구들의 이야긴 숱하게 들어왔지만 만큼 그것을 한국적 액션과 휴먼 드라마로 섞어낸 영화는 드물다.

유오성의 마지막 대사처럼 는 끝까지 "쪽팔리지 않으려고" 애를 쓴 흔적이 넉넉히 묻어있는 영화. 거친 부산 사나이로 변신한 장동건의 연기도 그리 나쁘진 않지만, 유오성의 연기는 인간의 한계선 마저 훌쩍 뛰어넘은 듯 광기가 서려있다. 카메라가 유오성을 비추기만 하면 왠지 모를 전율이 온몸을 휘감고 지나가는데 그 힘의 근원이 뭔지 궁금하다. 그건 유오성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신비의 에너지'가 아닐까. 한국영화계는 로 멋진 배우 한 명을 다시 '발견'했다.



황희연 benot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