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썽쟁이 손오공을 사과하게 하려면…

　초등학교 2학년 체육시간 때 학교 운동장에서 달리다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간 적이 있다. 장난기가 많아 ‘손오공’이라 불리던 남학생 친구가 내 발을 걸었다. 몸이 공중에 붕 뜬 뒤 떨어졌는데 바닥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 의사는 완전히 부러져 어긋난 쇄골이 찍힌 엑스레이를 보여줬다. 양쪽 어깨에 뫼비우스 띠(∞) 모양의 두꺼운 깁스를 하고서야 집에 올 수 있었다.

　그날 밤 집 초인종이 울렸다. 엄마가 나가 보니 손오공과 그의 엄마가 서 있었다. 손오공은 이미 무지하게 혼이 난 듯 눈썹이 어깨까지 처져 있었다. 손오공의 엄마는 “너무 죄송하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엄마가 손오공을 혼쭐 내주겠지’ 하고 기대했는데 엄마는 “너도 많이 놀랐겠다. 다시는 그런 장난 하면 안 돼”라고 말해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손오공의 엄마는 묵직한 유리병에 담긴 훼미리주스를 놓고 떠났다.

　손오공이 그때 초등학생이었던 게 참 다행이다. 지금은 진심 어린 사과와 주스 한 병 정도로 일이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2004년 공포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은 학생의 신체·정신·재산상 피해를 야기한 포괄적 행위를 학교폭력으로 보고 이런 갈등을 반드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통해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학폭위는 5∼10명으로 구성하되 이 중 과반수는 학부모 위원으로 채우고 나머지는 교감 교사 변호사 경찰관 의사 등으로 구성하게 돼 있다. 매뉴얼에 따르면 학폭이 의심되는 상황은 반드시 학교장을 거쳐 학폭위에 통보돼야 한다. 이때 교사에게 중요한 것은 훈육이 아닌 신고이며, ‘법적으로 깔끔한’ 처리다. 만약 즉시 신고하지 않고 양쪽 아이를 불러 대화라도 시도하다 문제가 되면 교육청 감사 등에서 혼이 날 각오를 해야 한다.

　학폭위는 양쪽 주장을 듣고 시비를 따진다. 학폭이라고 결론 난 사안은 무조건 선도(징계) 조치가 내려진다. 조치는 ‘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부터 ‘퇴학’에 이르기까지 9단계로 나뉜다. 이런 사실은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된다.

　많은 경우 학폭에서 피해학생이 원하는 건 가해학생의 진심 어린 사과와 뉘우침,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과 실행이다. 그러나 엄벌주의의 학폭법 체제에서 가해자들은 뻔뻔해지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 부모 입장에선 어처구니가 없다. 가해학생과 그 부모가 ‘우리도 잘못했지만 그쪽도 문제’란 식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변호사부터 대동하고 나서는 가해부모도 있다. 소송전도 이어진다. 문제의 본말이 뒤바뀌며 어른싸움으로 번진다. 가해학생에 대한 계도나 피해학생에 대한 치유는 뒷전으로 밀린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같은 반 아이들 모두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거기까지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다.

　최근 언론을 장식하는 요즘 학생들의 극악스러운 학폭 사건들을 보면 학폭법은 물론이고 형법으로 엄단해도 시원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똑같이 학교폭력이라 불리는 많은 사건 중 상당수는 엄벌보다는 대화와 지도, 교사의 면밀한 관심과 친구들의 지지를 필요로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오늘의 학교는 미셸 푸코가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했던 말 그대로 감옥의 모습을 닮아 있다. 재판과 처벌, 낙인과 감시만 있을 뿐 서로의 상처에 공감하고, 용서를 구하며, 그를 통해 성장하는 과정이 없는 것이다. 때로 진심 어린 사과와 훼미리주스가 있던 옛 시절의 학교가 차라리 그리운 이유다


임우선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