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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 깜짝 시구, 구단도 KBO도 몰랐다

Posted October. 28, 2013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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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2시. 경기 시작을 15분쯤 앞두고 서울 잠실야구장 중앙 출입구에 박근혜 대통령이 나타났다. 박 대통령은 이곳에서 한국야구위원회(KBO) 구본능 총재와 양해영 총장 등 야구 관계자들의 영접을 받았고 잠시 뒤 3루 쪽 통로를 통해 그라운드에 등장했다. 대통령이 걸어갈 때 옆에서 재롱을 떤 마스코트 인형들은 모두 분장한 경호원들이었다.

박 대통령이 프로야구 두산과 삼성의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린 잠실구장을 찾아 깜짝 시구를 했다. 박 대통령은 영어로 KOREA SERIES라고 쓰인 검은색 운동복 상의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채 태극기가 그려진 글러브를 끼고 마운드로 향했다. 박 대통령은 나광남 주심의 안내를 받아 마운드 앞에 섰고 삼성 톱타자 배영섭을 상대로 원 바운드 시구를 했다. 공은 두산 포수 최재훈이 받았다.

박 대통령의 시구는 이날 오전에서야 갑작스럽게 결정됐다. KBO 관계자는 2주 전부터 청와대에 요청을 했는데 전날까지 어렵다고 하다 오전에 연락을 받았다. 대통령이 시구할 가능성에 대비해 시구 때 입을 옷과 연습용 글러브 등은 미리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오지 않았다면 이날 시구는 국내 프로야구 첫 여성 장내 아나운서인 모연희 씨(73)가 할 예정이었다. 박 대통령은 시구 후 중앙 지정석으로 이동해 서울 언북중 야구부 학생들과 2회말까지 관전한 뒤 경기장을 떠났다.

박 대통령을 포함해 프로야구 경기에서 시구를 한 대통령은 모두 4명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프로야구 출범 원년인 1982년 동대문구장 개막전에서 시구를 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4, 1995년 한국시리즈 1차전 및 1995년 4월 정규시즌 개막전 등 3차례나 잠실구장에서 시구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7월 17일 올스타전이 열린 대전구장을 찾아 시구를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 9월 잠실구장을 방문해 가족과 함께 경기를 관전했지만 시구는 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시구는 노 전 대통령 이후 10년여 만이다.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 팬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해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시구를 자주 한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5월 5일 도쿄돔을 찾아 시구식에서 심판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편 청와대는 경호 문제 때문에 시구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미리 KBO에 알려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운동장은 대통령에 대한 경호가 가장 취약한 곳이라 결정이 늦었다. 국민과 함께 야구를 보고 싶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강했다고 전했다. 민주당 김관영 대변인은 현안 브리핑에서 최근 떨어지는 국정 지지도를 만회하기 위해 국민적 관심이 모인 야구장으로 달려간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며 대통령의 시구가 국민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기보다는 복잡한 정국을 외면하는 한가하고 무책임한 모습으로 국민에게 비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승건 why@donga.com동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