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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DNA, 거친 입

Posted September. 12, 2013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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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이상배 의원은 당내 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외교는 한국 외교사의 치욕 중 하나로 등신외교의 표상이라고 말했다. 취재기자조차 귀를 의심했다. 민주당은 즉각 국회 일정을 보이콧했다. 이 의원의 사과로 국회는 다음 날 정상화됐지만 막말 본색이 어디 가겠나. 그로부터 두 달여 뒤 한나라당 김병호, 박주천 의원은 난센스 퀴즈를 냈다. 노 대통령과 개구리의 공통점은?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 시도 때도 없이 짖는다에 이어 생긴 게 똑같다.

10년이 흐른 지금 민주당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귀태(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홍익표 의원) 바뀐 애(박 대통령을 비꼬는 말정청래 의원) 당신(이해찬 의원), 그리고 그년(이종걸 의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런 한결같음을 정치권의 미덕()이라고 해야 하나.

정치인의 막말은 선거 판도도 바꿔놓았다. 1998년 지방선거에선 김대중 대통령은 거짓말을 많이 해 공업용 미싱으로 입을 박아야 한다는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의 말이, 지난해 총선에선 라이스(전 미국 국무장관)를 강간해서 죽이자는 나꼼수 김용민 민주당 후보의 말이 상대편 지지자를 투표소로 이끌었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세 치 혀를 주체 못하니 인간의 뇌 중 정치인의 뇌가 가장 비싸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비싼 이유는 거의 쓰질 않아서란다.

동아일보가 19대 국회 회의록을 분석해 막말 의원을 꼽아 보니 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1위에 올랐다. 주로 상대를 당신이라고 하대()하며 반말을 많이 했다. 앞으로 의원끼리 존경하는 의원님이라는 빈말 대신 당신이라고 부르는 건 어떨까. 당신이란 호칭을 용인하면 막말 건수라도 줄지 않겠나. 가는 말이 고우면 사람을 얕잡아보는 세상이라지만 막말은 더 거친 막말을 부를 뿐이다. 누에가 자신의 입에서 나온 실로 집을 짓고 살듯 사람도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로 자신의 인생을 경영한다는 말이 있다.

이 재 명 논설위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