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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 시청각장애 신부 악셀로드-아최초 청각장애 신부 박민서 침묵의

세계최초 시청각장애 신부 악셀로드-아최초 청각장애 신부 박민서 침묵의

Posted June. 24, 201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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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침묵의 대화였다. 가끔 으으으 하는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지만 주변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상대방의 손을 만지고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한없는 존경과 신뢰를 표시했다.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성당.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시청각 장애인 가톨릭 사제인 키릴 악셀로드 신부(71남아프리카공화국)와 아시아 최초의 청각 장애인 신부인 박민서 신부(38가톨릭농아선교회)를 함께 만났다. 그나마 앞을 볼 수 있는 박 신부가 소리뿐 아니라 빛까지 잃은 채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노구의 신부를 부축했다.

어느 순간, 박 신부의 눈에 눈물이 비쳤다. 두 살 때 홍역으로 청각을 잃은 뒤 가톨릭 사제의 꿈을 꾸던 시절부터 그에게 악셀로드 신부는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오랜 동지이자 스승이었다. 박 신부는 악셀로드 신부의 생애를 담은 책 키릴 악셀로드 신부(가톨릭출판사) 출간을 주선하기도 했다.

악셀로드 신부는 영국, 미국, 홍콩 등 8개국 수화로 의사 표현을 할 수는 있지만 보지도 듣지도 못하기 때문에 상대의 수화를 촉각으로 인식한다. 이날 인터뷰는 기자가 질문하면 최연숙 수녀(순교복자회)가 중국 광둥어로 옮기고, 악셀로드 신부는 수화통역자인 시몬 찬 씨(홍콩)의 손을 만져 질문을 파악한 뒤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또 악셀로드 신부의 수화 답변은 찬 씨가 광둥어로 옮기고 최 수녀가 다시 우리말로 옮겼다.

어느새 이들의 대화는 1997년 가을 미국 워싱턴에 있는 갤러뎃 대학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시점으로 거슬러 가 있었다.

그해 박 신부를 만나는 순간 희망, 행복, 흥분을 함께 느꼈어요. 박 신부가 한국의 청각장애인을 위해 큰일을 할 것으로 예감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어요. 이것은 기적입니다.(악셀로드 신부)

신부님은 겸손하고 평화로운 분이었습니다. 그때 나도 사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어요. 그 뒤 신부님이 시력마저 잃었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박 신부)

세 살 때 선천성 청각 장애 진단을 받은 악셀로드 신부는 1970년 사제가 된 뒤 세계 각지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목 활동을 펼쳐 왔다. 1980년 시각과 청각 장애를 모두 갖는 어셔 증후군 판정을 받은 뒤 2000년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이제까지 청각장애인의 세상에서 살았는데, 눈마저 보이지 않게 되자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두려움이 생겼어요. 그러나 내 인생에 아주 특별한 일이 벌어졌다고 여기자 인생이라는 긴 계단은 새로운 문을 보여 줬습니다.(악셀로드 신부)

온갖 어려움 속에 10년간 준비한 석사 논문이 탈락하자 이제 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죠. 이마저도 못하면 장애가 있는 내가 어떻게 신부가 될 수 있겠느냐는 절망감이었죠.(박 신부)

두 신부는 어머니와 사랑에 관한 질문에 많은 공감을 표시했다.

어머니는 정통 유대교 신자이면서도 가톨릭을 선택한 저의 길을 축복했어요. 어머니는 항상 제 의견을 존중했고, 저는 동료 유대인들에게 난 가톨릭 랍비라고 했죠.(웃음)

중학교 시절 일반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의 입을 뚫어져라 보며 나는 왜 여기 있나라며 속으로 화내고 울었죠.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항상 강해져라, 너는 할 수 있다고 하셨죠.(박 신부)

악셀로드 신부는 자신의 인생을 이끈 최고의 키워드로 인커리지먼트(encouragement격려)를, 박 신부는 다 함께를 각각 꼽았다.

강연에 참석하기 위해 더듬더듬 조심스럽게 일어난 악셀로드 신부의 손은 평온하고 따뜻했다. 그가 한강성당에서 진행한 강연의 제목은 이 세상에 할 일이 있다. 나도!였다. 제목처럼 이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은 있었지만 포기는 없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