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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키아 몰락은 핀란드의 축복

Posted February. 08, 201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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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선 아무나 붙잡고 물어도 노키아에 대해 한마디 들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삼성에 대해 누구나 한마디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구 540만 명의 작은 나라를 휴대전화의 왕국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 채웠던 노키아는 이제 없다. 2000년 국내총생산(GDP)의 4%를 차지했던 기업 규모가 지금은 1%로 쪼그라들었다. 1998년 세계 1위의 휴대전화 회사로 등극한 이래 핀란드 경제의 3분의 1을 떠맡았던 국민기업이 2007년 애플의 아이폰 등장 이후 애물단지처럼 추락했다. 1위의 저주, 변화를 외면한 오만, 컨센서스에 의존하다 놓친 스피드 경영. 애증의 언어는 많다. 그중 노키아의 몰락이 이 나라에서 일어난 가장 잘된 일이라는 말이 요즘 유행이라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전했다.

노키아 출신이 창업한 신생기업이 300개가 넘었다. 노키아의 추락이 거꾸로 핀란드 벤처 생태계에 변혁을 몰고 왔다. 노키아 같은 대기업에 취업하기를 원했던 대학생들은 이제 창업을 쿨하게 여긴다. 2003년 헬싱키기술대학 학생 셋이 창업해 2009년 앵그리버드 게임으로 히트 친 로비오는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롤 모델이 됐다. 혹독한 기후와 빈약한 자원 때문에 사람과 하이테크에 투자했던 나라, 그런데 나라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컸던 노키아로 인해 한껏 발휘하지 못했던 국민의 잠재력이 뒤늦게 폭발한 셈이다.

노키아가 흔들리고는 있지만 핀란드는 여전히 국민소득 4만5500달러에 반부패 1위, 글로벌 경쟁력 3위의 선진국이다. 국가 부채는 유로존의 절반에 불과할 만큼 재정도 탄탄하다. 정부는 노키아의 위기를 목격하며 2008년 대학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혁신에 나섰다. 이때 설립한 알토 대학의 학생들은 창업의 여름 행사를 여는 등 창업 열기를 확산시켰다. 사우나의 나라답게 창업 사우나라는 이름의 민관 창업지원지구, 유망 벤처를 지원하는 기술혁신투자청(TEKES)을 세워 자금부터 경영까지 체계적으로 뒷받침을 했다. 큰 정부도, 강한 정부도 아닌 잘하는 정부가 축복을 몰고 온 것이다.

북유럽 모델을 선망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에도 많다. 특히 보편적 복지 모델을 선()으로 여기는 이들이 복지를 늘려야 선진국 된다 북유럽은 위기에도 복지를 줄이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북유럽은 복지국가가 되기 전에 부자나라가 먼저 됐음은 역사가 증명한다. 1990년대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더 내고 더 받기 식의 복지 모델은 작동할 수 없다는 것도 이미 경험했다. 핀란드 벤처 모델의 교훈도 대기업이 망해야 벤처가 큰다로 봐선 안 된다. 개개인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키워주는 정부라면 우리도 혁신국가가 될 수 있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