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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 보다 매력에 빠져 한달만에 한글 읽고 쓰게돼 기적

영화-드라마 보다 매력에 빠져 한달만에 한글 읽고 쓰게돼 기적

Posted June. 01, 2012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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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일본 도쿄 한국문화원 4층의 해외 한국어보급 기관인 세종학당 한글 입문반. 선생님이 왜라는 단어의 뜻을 설명하자 10여 명의 주부학생들 사이에서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한국 드라마에서 숱하게 듣던 단어의 의미를 비로소 알았기 때문이었다. 학생 중에는 중견 여배우 아키요시 구미코(57)도 있었다. 설명이 이해되지 않을 때마다 그는 질문을 도맡아 했다.수업이 끝난 후 교실 옆 사랑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만나서 영광입니다라고 하자 한국말로 망극하옵니다. 기자라고 응수했다.

왜 한글을 배우나.

엄마가 겨울소나타(겨울연가)를 함께 보자고 강권했다. 한국 드라마에서 남자는 여자와 함께 울어준다. 일본도 옛날에는 그랬다. 1970년대부터 야쿠자 영화가 주를 이루면서 여자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는 시대가 됐다. 요즘은 여자가 앞에 가고, 남자가 여자의 뒷모습을 보는 시대가 됐지만. 엄마는 한국 드라마 덕분에 행복하게 돌아가셨다. 5년 반 전이다. 최근에는 한국 방송 관계자들을 만나 영화 크로싱 얘기를 했다. 영화나 드라마 보고 운 적이 없던 내가 이 영화 보고 울었다. 사상이 아니라 가족 문제를 통해 지금 상황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작은 디테일까지 아름답게 포착한 비극적 영화다. 그런 얘기들을 했더니 한글을 한번 배워 보라고 하더라. 나는 뭘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곧 해버리는 성격이다.

배워 보니 어떤가.

기호로만 보이던 한글을 불과 한 달여 만에 읽고 쓰게 됐다. 이건 기적이다.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말을 배우면서 그 뒤의 역사와 문화, 모든 것이 떠오른다. 문이 열린다는 생각이다. 한국말은 일본말과 비슷하지만 한글은 생각하는 방식이 알파벳식이고 디지털식이다. 정보통신 시대의 생각 방식이다. 미래적인 글로도 생각된다. 한국 사람들이 최근 세계사 가운데로 뻗어 나가는 것은 그런 생각 방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배우로서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생각은.

요즘 NHK에서 방송하고 있는 이산을 무척 좋아한다. 이산을 보면 그 시대의 역사와 정치 학문을 모두 알 수 있다. 예컨대 걸어서 외국(청나라)에 간다는 게 매우 신선하다. 일본은 그런 발상이 없다. 왕이 어릴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고 도서실에서 중신 회의가 열리는 것도 흥미롭다. 일본 사극에는 그런 장면이 없다. 정조의 호위무사인 박대수가 출세한 뒤에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수야 하고 부르는 장면에서는 감동해 가슴이 무너졌다. 이산의 다음 스토리가 너무 궁금해 참지 못하고 서점에서 책을 사 다 읽어버렸다.

혐한 바람에 대한 생각은.

여자는 의외로 자유롭다. 다른 나라 말도 금방 배운다. 남자는 정체성을 지키려 한다. 그러다 보니 일본은 영어 교육도 뒤처졌다. 너도나도 한국, 한국 하니까 일본은 도대체 뭐냐 하는 상황이 됐지만 이렇게 가까운 나라와는 더 교류하는 것이 좋다. 교류를 하면서도 정체성에 자신을 가지는 게 어른이다. 좁은 마음에 자기 생각대로만 하는 것은 문화적으로 유치하다. 이는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일 합작 영화에 출연할 계획은.

기회를 잡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한글 공부를 하고 있다(웃음). 내 이름은 구미코다. 한국말로 구미가 당기는 아이라고 한다. 호기심이 많고 한국과의 관계에도 구미가 당긴다. 나도 인간적으로 매력 있는 역을 해보고 싶다.



배극인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