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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패션 한류

Posted October. 17, 2011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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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이명박 대통령 부부를 위해 마련한 국빈 만찬에서 미셸 오바마 여사가 입은 보랏빛 드레스는 한국계 미국인 패션디자이너 정두리 씨의 작품이다. 정 씨는 드레이프(자연스럽게 주름이 잡히며 늘어지는 드레스)의 여왕으로 불린다. 오바마 여사가 입은 한쪽 어깨 끈이 없는 과감한 디자인과 귀족적인 색깔, 우아하게 떨어지는 드레이프에서 그의 빼어난 디자인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미셸 여사가 정 씨의 의상을 택한 것은 한국에 대한 배려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정 씨가 만드는 옷이 마음에 들어서일 것이다.

네 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가 34년째 살고 있는 교포 1.5세인 정 씨는 뉴욕에서 정상급 디자이너 자리에 올라섰다. 날씬하건 뚱뚱하건 여성의 몸을 돋보이게 하는 의상으로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뉴욕의 명문 패션스쿨인 파슨스 디자인스쿨을 졸업하고 유명 디자이너 제프리 빈 밑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일한 뒤 2003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두리(Doo.Ri) 컬렉션을 설립했다. 영화 트와일라잇의 여주인공 크리스틴 스튜어트, 트랜스포머의 여주인공 메건 폭스가 그의 옷을 즐겨 입는다.

뉴욕컬렉션은 파리컬렉션보다 먼저 열린다. 뉴욕이 유행을 선도한다는 의미다. 그런 뉴욕 패션계에서 한국 디자이너의 부상이 두드러진다. 마크 제이콥스의 수석 디자이너를 지낸 교포 2세 리처드 채는 파이낸셜타임스지가 패션계의 새로운 스타라고 했을 만큼 주목을 끌고 있다. 한국에서 자라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로는 막스 마라 디자이너 출신인 크리스 한, Y&KEI를 운영하는 부부 디자이너 강진영 윤한희 씨 등이 있다.

뉴욕 패션계는 전통적으로 유대인이 장악해 왔다. 칼럼니스트 말콤 글래드웰은 뉴욕에 이민 온 유대인들이 처음에는 거의 봉제업에 종사했다며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부모의 영향으로 후손들이 자부심을 갖고 미국사회에 정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옷을 잘 만지는 한국인의 솜씨와 섬세한 감각으로 볼 때 한국계가 유대인을 압도하지 말란 법도 없다. 파슨스 디자인스쿨 재학생의 30%가 한국계라고 한다. 노래와 드라마를 넘어 패션 한류의 미래도 궁금해진다.

정 성 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