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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 문화재 찾자 총성 없는 전쟁

Posted September. 22, 200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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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 10월 포르투갈 인근 해역에서 스페인 함선이 영국 군함에 침몰됐다. 비운의 함선 이름은 누에스트라 세뇨라 드 라 메르세데스.

200년 넘게 잠들어 있던 메르세데스의 전설을 5월 미국 심해 탐사업체 오디세이 마린 익스플로레이션이 흔들어 깨웠다. 오디세이 측은 대서양 공해()에서 5억 달러(약 4670억 원)어치의 금은보화를 실은 난파선을 인양했다고 발표했다. 역사상 최대 가치의 보물선이었다.

스페인은 즉각 보물선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보물선이 보관된 미국 플로리다 주 탬파의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특히 수중 유물의 소유권 분쟁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약탈 문화재 반환 협상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여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대서양 보물선의 주인은?=스페인 정부 측은 스페인은 주권국으로서 자국의 문화유산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며 보물선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

반면 탐사업체 오디세이는 우리가 발견하고 인양했으니 우리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레그 스템 오디세이 공동회장은 정교한 탐사 기술과 고고학 지식을 이용해 발굴한 것이다. 소유할 수 없다면 누가 돈을 들여가며 수중 유물을 발굴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소송의 당사자는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최근 사설에서 페루 정부도 변호사를 보내 보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난파선에 실린 금화와 은화는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페루에서 주조된 것이므로 스페인이 약탈한 페루의 문화재라는 논리다.

문제는 보물선이 침몰됐던 1804년 당시 독립 주권국가가 아니었던 페루가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느냐는 것.

끊이지 않는 문화재 반환 운동=페루는 그리스 정부의 엘긴 마블 문화재 반환 운동에서 힘을 얻고 있다. 엘긴 마블은 파르테논 신전을 장식했던 대리석 조각상들로 19세기 터키 주재 외교관이던 엘긴 경이 영국으로 반출했다. 당시 그리스는 터키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수십 년간 줄기차게 반환 요구를 해 온 그리스는 엘긴 마블을 소장할 새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내년 초 개장을 목표로 건립하면서 영국을 압박하고 있다. 대영박물관은 최근 엘긴 마블을 대여해 줄 수 있다며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보였다.

예전에도 국가 간 문화재 분쟁 해결을 위한 각종 협약이 있었지만 1950년대 이후 제정된 것들이어서 소급 적용이 어렵고 그나마 가입국들에 한해서만 법적 효력을 갖는다. 이 때문에 독자적인 외교 노력을 통해 문화재를 되찾는 국가가 많다.

에티오피아는 12일 콥트력(고대 이집트 달력) 기준의 새 밀레니엄을 맞아 외세가 빼앗아간 문화재 반환 캠페인을 개시했다. 2005년 이탈리아가 약탈해 간 1700년 전 오벨리스크를 돌려받은 데 이어 최근에는 19세기 중반 영국에 포로로 끌려가 윈저궁에 매장된 왕자의 유해 반환 운동도 벌이고 있다.

페루는 17일 예일대가 페루의 유적지 마추픽추에서 발굴해 간 잉카문명 유물 4000여 점을 돌려받기로 했다. 한국은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외규장각 도서를 되돌려 받기 위해 프랑스 측과 협의를 벌여 왔으나 진전이 없는 상태다.



이진영 ecolee@donga.com